[수능시험 不正파문]“반칙 권하는 사회… 어른부터 매맞아야”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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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한건주의’가 교육 분야에서 표출된 것이다.”(배호순·裵浩栒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 “전체적인 사회병리의 상징적인 사건이다.”(이희도·李熙道 계명대 교육학과 교수) 광주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터진 지 꼭 일주일이 됐다. 본보 취재팀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등을 짚어 보기 위해 각 분야의 교수 10명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의 배경에 대해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의식 저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입시제도, 학교권위의 추락, 지나친 경쟁구조 등 다양한 진단을 내놨다. 또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병폐가 미래의 주인인 학생들을 통해 표출된 상징적 사례’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도덕의식의 붕괴=전문가들은 우선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졌다는 데 대해 개탄했다.



수능不正 학생들 처벌 어떻게 해야하나(POLL)

김명수(金明秀)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부정행위’가 얼마나 많은가”라고 반문하며 “학생들을 범죄자로 낙인을 찍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찬구(朴贊玖)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윤리’라고 불리던 것들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며 “목표 달성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만연돼 윤리 교육에는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형(許炯)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TV 인터넷 등에 온갖 유해한 것들이 나돌다 보니 악(惡)에 처한 환경은 같은데 첨단기술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쉽게 이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과잉경쟁을 권하는 사회=신종호(申宗昊)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누구든 부정행위가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소위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양심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희도 교수도 “요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싸워서 이기라고 배운다”며 “부모가 아이들을 그렇게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아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시스템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종엽(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게 현실인데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시험을 잘 보려는 생각이 학생들 머리에 가득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정유성(鄭有盛) 서강대 교육학과 교수도 “‘수능=인생의 전부’를 강요하는 현행 제도보다 다양한 방식의 평가를 해야 한다”며 “이제 국민적 합의에 따라 사회 전반의 체질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진곤(鄭鎭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능으로 인생이 좌우되다 보니 교사들도 아이들의 장래를 망칠까봐 부정행위를 목격하더라도 쉽게 적발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해결 방안은 없나=‘도덕성의 회복’ 등 장기적 과제와 함께 ‘부정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험제도 마련’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배호순 교수는 “사회정의와 학교권위를 되찾는 방법밖에 없다”며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전상인(全相仁) 한림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번 사건이 부정행위만 부각되면서 경찰의 형사사건으로만 비춰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 문제는 교육적 견지에서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장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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