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성주]세계는 ‘대학 혁명’중인데…

  • 입력 2004년 10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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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식정보사회를 맞아 온 세계가 교육 혁명 중이다. 미국은 글로벌 경쟁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교육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유럽의 여러 나라도 전통적 학제를 개선하기 위한 ‘볼로냐 협정’을 채택해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대학교육을 유럽연합(EU) 차원으로 승화 발전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그랑제콜 시스템에 의한 엘리트 교육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독일의 경우 획일적이던 대학들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입학생의 70%는 국가에서 배정하되 30%는 각 대학이 자체 선발해 별도의 학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각국 국제경쟁력 키우기 전력▼

일본은 게이오나 와세다 등 사립대의 약진에 자극받아 국립대의 법인화와 자율화 개혁을 금년 봄부터 시작했다. 중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100대 대학, 2+8 중점지원 대학 등을 선정해 선택과 집중에 의한 교육 투자를 국가 최우선 전략으로 과감히 추진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마저 아시아의 교육 허브가 되겠다며 교육에 대한 대외 개방과 함께 무한정의 투자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지식정보시대의 핵심 역량인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동안 우리는 대학 교육의 혁신을 위해 위원회도 만들고 논의도 많이 했으나 결과적으로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각자 선호하는, 그리고 유리한 대학입시 방식을 위해 또다시 양분돼 극한투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실속보다 형식을, 내용보다 허명을 추구하는 면이 강하다. 특히 교육의 경우에는 교육 시장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로 허상에 대한 착시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에 시장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을 시장에 맡기는 근본 이유는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 복리가 증진된다고 믿는 데에 있다. 이때 경쟁은 서로 비교하는 데에서 출발하며 비교를 위해서는 상품가격과 같이 측정 가능한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문제점은 산출물에 대한 비교 척도가 한 가지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덕체의 인간이 산출물인 교육에서 만인이 공감하는 한 가지 잣대는 있을 수 없으며 당연히 다양한 잣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마치 100m 달리기처럼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평가를 교육에도 적용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선호하는 데에 입시 문제의 근원이 있다. 대학은 질적 평가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산출물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 다음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투입에 대한 비교이다. 그러나 가장 싸고 투자를 적게 하는 대학이 가장 좋은 대학인가? 우수한 학생만 모아 놓으면 교육이 엉망이어도 우수한 졸업생이 배출되는가? 졸업 후 취업률이 40%대인 일류 대학이 과연 일류인가?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산출물에 대한 평가를 포기한 채 투입에 대한 선점 싸움이 팽배해 있으며 현재 부각된 교육의 문제도 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입시제도에 발목잡혀▼

개인이든 학교든 서로를 비교하지 말고 경쟁력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비교와 평가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계층간 갈등이 결정적인 걸림돌이라면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비교와 경쟁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 수능강의처럼 국가 차원의 별도 지원이나 미국의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와 같은 특별할당제가 더 바람직하다.

교육은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는 국가 선행지표다. 대학입시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학교육의 경쟁력이며 여기에 온 힘을 합쳐야 한다. 대학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혀 교육에서도 뒤지면 우리의 미래가 있겠는가?

박성주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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