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독립운동 나무’ 市문화재 된다

  • 입력 2004년 10월 12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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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연지동 구 정신여고 터에서 수백년간 시대의 격랑을 목도해 온 회화나무. 326년이나 된 유서 깊은 이 나무에 얽힌 일제강점기 애국 여성들의 비화가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 문화재 지정이 검토되고 있다.-원대연기자
서울 종로구 연지동 구 정신여고 터에서 수백년간 시대의 격랑을 목도해 온 회화나무. 326년이나 된 유서 깊은 이 나무에 얽힌 일제강점기 애국 여성들의 비화가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 문화재 지정이 검토되고 있다.-원대연기자
서울 종로구 연지동 옛 정신여고 교정에는 나이 든 아름드리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십년 동안 여학생들이 재잘대며 나누는 꿈과 희망, 잡담을 들어주며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줬던 이 나무가 곧 서울시 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이 나무에 얽힌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비화가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3·1만세운동의 여파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19년 11월 경. 정신여학교(정신여고의 전신) 교사와 학생들은 이 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나라 잃은 설움과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피어나는 청춘의 꿈을 나누곤 했다.

특히 이 학교 4회 졸업생으로서 당시 교사로 재직하던 김마리아(金瑪利亞·1891∼1944) 선생은 역시 이 학교 출신인 이혜경 황에스더 이정숙 등과 함께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여성항일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간부의 배신으로 애국부인회는 위기를 맞았다. 일제는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 김마리아, 장선희, 이정숙, 김영순 등 애국부인회 핵심 간부 9명을 기소했고 43명을 불기소했다. 이른바 ‘애국부인회 사건’.

애국부인회의 비밀본부 격이던 정신여학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일경은 학교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크지 않은 학교 건물 어느 곳에도 일제가 혈안이 돼 찾으려던 조직원 명부 등 반역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덕분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애국부인회 활동 관련 자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신여고 관계자와 여성 항일 운동가의 후손들은 최근 서울 시내의 고목(古木) 실태 파악에 나선 전문가들에게 “애국부인회 활동을 하던 교사들은 일경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조직원들의 신상명세를 적은 비밀문서, 태극기 등을 운동장 옆 회화나무 밑에 묻어 놓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한 국사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국사 교과서와 노트까지도 나무 밑에 넣어 뒀다고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이 문서들을 나중에 누가 꺼내 어디로 옮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한 학교 관계자는 12일 “오랜 세월 교내에서 조용히 전해 오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최근 서울나무종합병원에 나무 나이 측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이 나무는 무려 326년이나 된 것으로 추정됐다. 조선 숙종 때 심어졌다는 것. 현재 나무의 높이는 21m, 둘레는 4m에 이른다. 서울시는 이 나무를 시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나무 소유주(서울보증보험) 등과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지금까지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는 3그루에 불과하다. 서초구 잠원동의 잠실리 뽕나무(15세기 성종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사한 상태)와 1936년 손기정(孫基禎·1912∼2002)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현 중구 만리동 손기정공원 자리에 심은 월계수,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600년 된 느티나무 등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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