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가는 사람들]불황때 이민 결심… 경기 풀릴때 뜬다

  • 입력 2004년 8월 30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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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코리안아메리칸학회 한국계 이민자 분석▼

“한국인 이민자들이 많아지면 미국의 국민소득 증가율이 높아진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들은 자국으로 이민해 들어오는 한국인을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의 비영리 민간 연구기관인 코리안아메리칸연구학회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잘 풀어주고 있다.


이 학회의 특별회원인 동아시아 경제학자이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위원인 마커스 놀랜드는 2002년 발표한 ‘한국계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인 이민자들의 기여도가 월등하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이 논문에 따르면 놀랜드 연구원은 지난 100여년간 한국인의 미국 이민 흐름을 △대한제국 말 하와이 농장으로의 이민 행렬 △6·25전쟁 직후 유학생과 미군 가족의 본토 진출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집단이주 등 3가지로 분류했다.

그는 이 중 세 번째 그룹에 초점을 맞춰 한국인 이민자들은 교육 성취도와 기업 활동 면에서 미국인들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미국 국민에 비해 대학교육을 받은 비율이 두 배에 이르고, 창업 비율도 70%나 더 높으며, 저축률은 두 배가량 높다는 것.

놀랜드 연구원은 또 “한국인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기업체는 1982년부터 15년간 고용 창출은 13배, 수입은 15배나 성장했다”며 “이들의 세대당 연간소득(약 5만달러)과 1인당 소득(약 2만달러)도 미국 평균치에 근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기업 활동과 고용 창출, 연간 수입, 세금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한국인 이민자가 두 배로 늘어나면 미국민의 국민소득 증가율이 0.1∼0.2% 늘어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또 “한국계 미국인들은 비록 영어 실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교육열과 경력에 대한 열정이 높다”며 “요즘은 이들의 2세들이 미국에서 신임을 얻고 있어 의사 변호사 보험인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도 한국 출신 이민자들이 자국의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는 판단에서 최근 한국의 기술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캐나다 이민부에 따르면 전체 한국인 기술 이민자 중 ‘숙련공(skilled worker)’ 이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7년 15.7%에서 2001년 21.3%로 늘어났다.

호주도 자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해 능력 있는 한국인 등 외국 출신 학생들이 호주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민을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경기 변동과 이민자 증감▼

1990∼2000년 미국 이민자를 분석한 결과 호황기에 오히려 전문직의 이민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호황의 정점을 이룬 1996년과 2000년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전년 대비 이민 증가율은 각각 45.8%, 43.3%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준비 기간 때문에 이민을 결심한 시점과 이민을 떠난 시점간에 발생하는 시차로 인한 현상이다. 통상 이민신청에서 허가까지 걸리는 시간은 1, 2년. 따라서 이들이 이민을 결정한 것은 94∼95년, 98∼99년으로 추정된다.

대신경제연구소 박정우(朴正祐) 연구원은 “91, 92년과 외환위기 등 극심한 경기불황을 거치면서 이민을 추진하게 된 전문직이 1, 2년 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외환위기 이후 퇴직과 실업, 또는 직업을 밝히지 않은 계층의 이민이 전체 이민 증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가장 불황이 심했던 외환위기 직후에는 환율 폭등 등으로 인해 모든 직업군의 전년 대비 이민 증가율이 급감했으나 이 계층의 이민만 전년 대비 32.8% 증가했다.

명지대 박화서(朴花緖·이민학) 교수는 “퇴직 가장이나 실업자가 당시 단순노무자로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든 연령대의 이민 증가율이 마이너스였던 1998년 명예퇴직의 주대상이었던 40대의 이민 증가율만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반면 호황기였던 2000년에는 40대의 전년 대비 이민 증가율이 주춤했다.

박 연구원은 “1999∼2000년은 신용카드 버블이 발생하고 벤처열풍이 불었던 시기”라며 “내수주도 호황기에는 체감경기가 다른 호황기보다 훨씬 좋아 40대가 이민보다는 창업을 대안으로 선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증가율이 둔화되는 시기인 2002년 하반기부터 40대 이상의 해외 이민 증가율이 다시 높아진다. 이는 조기 퇴직한 40대가 이 시기부터 자영업 대신 해외 이민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이민 시대’ 전문가 조언▼

최근 이민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에 체류하는 자국민이 많아질수록 우리 민족 전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들이 향후 우리나라와 해당 이민국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등 고국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고려대 윤인진(尹麟鎭·사회학) 교수는 “선진국으로의 이민을 두뇌 유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재들이 능력 활용의 기회를 찾는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전문인력들의 해외 진출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확장되는 효과도 가져 온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미국국제연구소에서 ‘한국 이민자와 세계경제’라는 주제로 연구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들의 경제적 경쟁력이 일반 미국인보다 1.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지대 교통관광대학원 박화서 교수는 “인구가 마치 ‘삼투막’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대에 이민자들을 우리나라에서 영원히 떠나는 사람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이민의 시대라는 현실에 걸맞은 실질적 제도를 마련해 이민자들이 타국에서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이나 인도 등에서는 의사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미국 등지에 진출해서도 차별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자국의 대학 커리큘럼을 미국과 동일하게 표준화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 정영국(鄭榮國) 교류사업부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등 국력 신장을 위해서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의 지원도 필요하다”며 “세계 곳곳에 있는 670만 재외동포들이 국내의 경제력 확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한국계 이민자의 기업활동 추이

1982198719921997
경영하는 업체 수 (단위:개)31,76969,304104,918135,571
연간 총매출(단위:1000달러)2,677,0677,682,66816,170,43845,936,497
자료:미국 중소기업청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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