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외국인 대학총장

  • 입력 2004년 5월 3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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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쇠퇴하고 로마가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그리스인은 지성(知性)의 대명사로 오래도록 군림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녀교육을 그리스인 교사에게 맡기는 게 관례였다. 그리스인은 지중해 곳곳에서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리스문명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그리스인의 지식을 적절히 활용해 세계를 정복한 로마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식은 뛰어났지만 단결력이 부족했던 그리스가 패망한 반면, 로마는 개방성과 포용력을 밑거름으로 제국을 건설했다.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버트 로플린 교수가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에 선임된 것은 대학에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대학들은 외국인은커녕 외부인사에게 총장을 맡기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다. KAIST 말고도 성균관대가 9월 개원하는 경영대학원 원장에 미국의 로버트 클렘코스키를 임명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은 미국 하버드대 법대 부총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미스를 총장으로 초빙했다. 이들이 얼마나 국내 대학에 적응하고 성과를 일궈내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외국인 총장에게 한국의 대학문화는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학에 대한 규제도 외국보다 훨씬 심하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국행을 결심한 외국인 총장도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을 테지만 그 차이를 메워줄 책임은 대학 쪽이 크다. 축구에서 거스 히딩크의 사례처럼 대학이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해줘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경영의 노하우를 외부에서 배워 올 수밖에 없다. 외국인 총장은 국내 대학 운영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학연이나 인맥으로부터 자유롭다. 외국인 총장 영입은 실패의 가능성도 있는 ‘실험’이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대학문화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대학의 선진화, 세계화는 해마다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엄청난 유학자금을 줄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지식에서 한수 위였던 그리스인을 포용한 로마인처럼 우리 대학도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아닐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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