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퇴직 할테니 아들 취업시켜 달라”… 취업세습 요구 늘어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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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직하는 대신 내 아들을 취업시켜 달라.”

울산공단의 모 대기업에 근무하는 생산직 사원 김모씨(55)는 회사가 조만간 신입사원을 모집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최근 담당 임원에게 찾아가 이같이 요구했다.

정년을 2년 남겨둔 자신이 조기 퇴직하는 대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2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는 아들(26)을 취업시켜 달라는 것. 회사측은 “아들의 입사요건만 충족되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김씨처럼 정년을 2∼4년 남겨둔 근로자들이 조기 퇴직의 조건으로 자녀의 취업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각한 청년실업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취업 세습’ 요구인 셈이다.

또 울산공단 내 H사 노조는 최근 회사측에 보낸 단체협상 개정안에서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임금협상 중인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일부 노조원들이 ‘취업 세습’의 명문화를 요구했지만 노조 집행부가 “지금도 고임금을 받는다는 지적이 있는 마당에 자녀 채용까지 요구하면 ‘철밥통 세습’이란 비난이 쏟아진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현대미포조선, SK 등은 신입사원 채용시 동점일 경우 사원 자녀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일 시작된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 노조에 정년을 보장하되 일정 연령이 되면 그때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제안하면서 ‘조합원 자녀의 취업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안도 함께 내놓았다.

이에 대해 노조가 거부했지만 정년을 앞둔 직원들은 ‘자녀 취업’에 솔깃해 하고 있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신입사원은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직원 자녀의 우선 채용도 나름의 선발기준이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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