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비애’… 잇단 자살에 검사들 충격

  • 입력 2004년 5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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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태영(朴泰榮) 전남지사의 영결식이 있던 3일 오전. 서울남부지검 검사들과 직원들은 묵념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훈규(李勳圭) 지검장은 “이유야 어찌됐든 검찰과 인연을 맺다 돌아가셨으니 애도의 뜻이라도 표하자”며 묵념을 제안했다고 검사들은 전했다.

같은 날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검찰청사 앞. 서울 지역 특수부 검사 몇 명이 술자리에 앉았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에 이어 박 지사까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술만 들이켰다고 한다.

박 지사 자살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일부 검사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칼의 비애’를 느낀다고 말하는 검사들도 있다. 물론 강압수사나 가혹행위 등 수사과정에서의 문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따라서 검찰이 직접적으로 책임질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자살사태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불법 대선자금 등 정치권 비리 수사에 지지를 보내던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도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검찰 간부로 있다가 최근에 퇴직한 변호사는 “현재의 검찰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길게 보면 검찰의 누적된 업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검사들도 피의자들의 심리상태를 헤아려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느슨해지고 상명하복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검사 개개인이 ‘권력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이 거의 없어지고, 검사 개개인의 재량이 확대된 상황에서 이제는 정치적 독립 문제보다는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적절하게 자제하고 통제하느냐가 검찰의 새 과제”라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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