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잃은 한나라 ‘敵前분열’ 치닫나

  • 입력 2004년 2월 17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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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왼쪽)는 17일 “총선에서 지면 당선되더라도 국회의원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최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왼쪽)는 17일 “총선에서 지면 당선되더라도 국회의원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최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17일 당 내분 수습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최 대표는 이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당이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재작년 대통령선거 당시 불법자금 모금이며 그 중심엔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있다”고 이 전 총재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전 총재와 당시 대선 지휘부였던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를 ‘지렛대’ 삼아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최 대표는 발언의 파문을 의식해 과격한 표현은 피했지만 발언 곳곳에서 이 전 총재측과의 ‘절연(絶緣)’ 의지가 드러났다.

최 대표측이 나중에 삭제했지만 원고 초안에 “이 전 총재는 역사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구절이 들어있었다는 후문이다.

최 대표는 대신 당내 소장파와 비주류 진영의 퇴진 요구도 일축하며 정면 돌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洪準杓) 전략기획위원장은 “최 대표의 지위는 흔들림 없을 것”이라며 “최 대표 주도의 당 개혁드라이브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가 이날 당사매각 공고를 내는 등 제2창당 수준의 개혁 프로그램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기로 한 배경에도 대표 퇴진 논란에 개의치 않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상황이 최 대표의 낙관적 입장처럼 간단치만은 않다. 우선 이 전 총재측과 당내 소장파 진영의 반응이 냉소적이다. 최 대표가 정작 자신의 희생적 결단은 외면한 채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 측근이 전했으나 이 전 총재 진영은 전반적으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는 반응이다. 이 측근은 “이 전 총재가 언제 검찰 수사를 회피했느냐”고 반문한 뒤 “최 대표가 책임을 떠넘긴다고 사태가 해결되나”라고 비판했다.

당내 소장파 진영도 “최 대표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소장파 의원은 “남 탓이나 하는 최 대표를 누가 따르겠느냐”며 “이런 식이면 수도권 선거를 치르기 힘들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앞으로 대표 퇴진 문제를 더욱 공론화할 태세다. 남경필(南景弼) 의원은 “소장파 중심의 논의 틀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내 수도권 의원들의 동조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 대표측과 당내 소장파 진영의 갈등은 당 내분 사태의 2라운드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양측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경우 한나라당은 총선 전 분당(分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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