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최초 서울대 법대 합격 최민석씨

  • 입력 2004년 2월 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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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청년이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중증 시각장애인(전맹·全盲)이 법대는 물론 서울대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발표된 정시모집 특별전형에 합격한 최민석씨(22)는 “장애인들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살아온 그의 생애는 길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인간승리’였다.》

그는 다섯 살 때 녹내장을 앓은 후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다. 당시 3년간 요양을 하느라 친구들보다 학업이 늦었다.

“그때의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하지만 어차피 고민해봤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을 쏟기로 결심했죠.”

일찍부터 맹학교를 다니며 장애인들을 접한 최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이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공부는 쉽지 않았다. 낮에는 안마수업 등 시각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실업계 교육을 받아야 했기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는 밤에만 할 수 있었다. 점자교재도 턱없이 부족했고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읽느라 남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는 컴퓨터로 교재를 스캔해 음성으로 듣고, 또 녹음해서 듣고….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중소기업 회사원인 아버지 최병엽씨(54)와 어머니 박동희씨(50), 누나가 최씨가 읽고 싶은 책을 사다 읽어주거나 녹음해 줬다. 이렇게 만들어진 녹음테이프만 수백개. 고3이 되면서 공부량이 많아지자 가족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암산으로 해결해야 했고 입체도형은 점자로 표시하기가 어려워 수학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 집에서 종로의 맹학교까지 왕복 2시간 거리를 안내견과 함께 통학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길렀다. 어머니 박씨는 처음에는 이런 아들의 뒤를 몰래 따라다녔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포기하고 대신 기도에 매달렸다. 박씨는 “힘든 순간에도 어떻게든 혼자 해냈던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대견해했다.

생각보다 수능 점수가 덜 나와(변환표준점수 367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최씨는 “그동안 힘들었지만 합격하고 보니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측은 최씨의 합격 여부를 놓고 내부적으로 찬반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명의 장애학생을 뽑기 위해 시설공사 등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기 때문.

그러나 안경환 법대 학장은 “수학능력이 있는 학생은 법이 정한 대로 공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선발했다”며 “지역과 계층이 다양하게 섞인 사회 속에서 서울대생들의 공동체의식도 더 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총장도 “학교 차원에서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국내대학 75% 장애학생복지 '낙제점'▼

국내 대학의 장애학생 교육복지가 낙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8∼12월 186개 4년제 대학의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실태를 평가한 결과 75%인 139개 대학이 종합점수에서 ‘개선요망’(100점 만점 기준 65점 미만) 판정을 받았다고 3일 밝혔다.

신입생 선발(4점), 교수·학습(31점), 시설·설비(65점) 등 3개 분야로 나눠 실시된 평가에서 ‘최우수’(90점 이상)는 나사렛대 대구대 등 2개대, ‘우수’(80점 이상)는 한림대 등 14개대로 나타났다.

특히 국공립 46개대 가운데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및 우수 판정을 받은 대학은 한 곳도 없어 국공립대가 사립대에 비해 장애학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2년마다 대학의 장애인 복지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올해 국공립대에 장애인시설 설치비 42억원을 지원하는 등 장애인의 학습권을 위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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