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성철/수능 혼란…뒤로 숨은 교육부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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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복수정답 인정을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인 23일 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촌극이 빚어졌다.

평가원이 복수정답 인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교육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려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종승(李鍾昇) 평가원장의 소재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이 대책회의는 무산됐다.

교육부 관계자 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거나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가원이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대한 검토 결과를 25일까지는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77만여 수험생의 이해가 걸린, 그리고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를 사안에 대해 ‘평가원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해 사태의 추이를 파악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부의 ‘나 몰라라’ 태도는 평가원이 24일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발표를 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의 공신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이번 사태에 대해 평가원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평가원의 책임은 크다. 하지만 교육부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평가원은 정부로부터 수능의 출제와 시행, 채점을 위임받은 기관이다. 대학입시와 관련한 사안을 지도 감독하고 관리하는 책임과 권한은 교육부가 가지고 있다. 평가원이 이번 사태의 1차 책임자라면 교육부는 최종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수능의 경우 학원 강의 경력자의 수능 출제위원 선정, 시중 문제지와 유사한 지문의 출제 의혹 등이 불거졌고 이에 대해 평가원이 수차례 해명 기자회견을 했지만 교육부의 책임 있는 인사가 교육 당국의 입장을 밝히거나 재발 방지대책을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런 교육부가 이 사태와 관련해 기민한 대응을 한 것은 딱 한 차례다. 24일 이 평가원장이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할 당시 배경 로고가 평소의 교육부 로고에서 평가원의 것으로 바뀐 걸 지적한 모 언론에 대해 교육부는 당일 ‘언론중재신청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다시피 해 온 교육부의 자세가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교육부는 뒤늦게 27일 이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나섰다. 여론에 떠밀린 억지 사과가 아니라 진심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홍성철 사회1부 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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