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보호센터 年90일만 이용…중산층 치매노인 ‘떠돌이 신세’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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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서모씨(44)는 12월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여든 살의 시어머니를 또 다른 ‘치매노인 단기보호센터’로 옮겨야 하기 때문. 적절한 기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옮길 때마다 병세가 나빠지는 시어머니를 지켜보는 것이 서씨에게는 더 큰 고통이다.

“보호센터를 옮기면 시어머니가 보름 동안은 자기를 또 내다버렸다고 생각하세요. 같이 지내던 친구들도 없어지고, 환경도 낯설기 때문이죠. 겨우 적응할 만하면 기간이 만료돼 또 다른 센터로 옮겨야 해요.”

현행 규정상 단기보호센터는 1년에 90일 이상 이용할 수 없다. 원래 집에서 치매노인을 돌보던 가족이 휴가 등의 사정이 있을 때 치매노인을 단기간 맡길 수 있도록 마련된 시설이기 때문.

하지만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치매노인을 맡길 수 있는 다른 시설이 없어 서씨의 경우처럼 대부분 3개월씩 1년에 4군데의 단기보호센터를 전전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한달 100만∼400만원의 월급으로는 월 120만∼130만원의 입원비를 내야 하는 노인전문병원이나 100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매월 150만원 이상의 유지비를 내야 하는 민간시설을 이용하기는 무리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장기 요양시설 역시 부양의무자가 없는 극빈층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따라 하루 1만2000∼1만4000원 정도를 내고 맡길 수 있는 단기보호센터가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그나마 단기보호센터도 전국에 31군데밖에 없어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치매를 앓고 있는 94세의 어머니를 모시는 최모씨(66)는 “어머니의 증세가 심해 집에서는 도저히 돌볼 수가 없다”며 “단기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없는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비인가 개인시설을 이용하는데 가격도 비싼 데다 단독주택 등에 노인들을 대거 수용해 여건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치매노인단기보호센터 김혜숙 과장은 “환경을 자주 바꾸는 것은 치매 환자에게 해롭다”며 “일단 센터에서 적응하는 데만 보름 정도 걸리는데 집중 관리를 통해 안정될 만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자 가족들은 이용기간을 6개월로 늘려줄 것을 구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호소하고 있지만 당국에서는 “원래 취지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90일로 이용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신규 이용자가 이용할 수 없다”며 “전국적으로 시설이 부족해 자치단체별로 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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