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민족을 지켜주소서" 이강훈선생 서울국립묘지 안장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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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보훈회관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이강훈 선생의 사회장 영결식. 영결식에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박영대기자
16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보훈회관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이강훈 선생의 사회장 영결식. 영결식에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박영대기자
최고령 독립운동가로 12일 타계한 전 광복회장 청뢰 이강훈(靑雷 李康勳) 선생의 영결식이 16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보훈회관에서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영결식에는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우전(金祐銓) 광복회장을 비롯해 사회 각계인사와 원로 애국지사, 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애도사에서 “선생은 100세를 사시는 동안 일본과 국내, 중국, 광복된 조국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며 “광복 이후 선생의 저술로 인해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한층 더 충실해졌으며 사이비 애국자는 정체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김 광복회장은 조사에서 “선생은 20세기 고난의 민족사에서 한 번도 굴절한 적이 없고 안위를 바란 적이 없다”며 “독립운동의 마지막 거목이 사라진다 싶어 쓸쓸하고 허망하다”고 말했다.

장례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종찬(李鍾贊)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 선생이 3·1운동 참가에 이어 항일무장저항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해 무력항일운동을 펼치고 1933년 일제의 주중(駐中)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암살하려다 옥고를 치렀던 약력을 소개했다.

이 선생은 일제 강점기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군자금을 북간도 독립군들에게 제공하는 등 국내외에서 큰 활약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뒤에는 광복회장직을 맡아 항일 역사 편찬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결식에는 한화갑(韓和甲) 김덕룡(金德龍) 이부영(李富榮) 정동영(鄭東泳) 의원 등이 헌화와 분향을 하며 고인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시했으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대신해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헌화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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