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달구벌 산책]섬유만 있고 패션은 없다

  • 입력 2003년 9월 26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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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도시를 여행할 때 나는 창조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현지의 패션관련 박물관을 들르곤 한다.

최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패션 관련 박물관에서 ‘여신의 패션’을 주제로 열린 역대 디자이너들의 작품 전시 행사를 눈여겨 본 적이 있다.

이미 작고한 모스키노, 크리스챤 디오르, 베르사체에서부터 현역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페레 등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을 연대별로 분류, 상세한 해설과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함께 간 친구들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리스 여신들이 입었을 법한 의상을 감상했지만 나는 관람 도중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단 한번의 패션쇼를 위해 1년에 걸쳐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 행사가 막을 내린 후, 디자이너 각자의 창고나 개인 보관실에 걸린 채 방치되는 게 고작인 한국의 열악한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의상작품을 모아 우리 삶의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박물관)도, 리더도, 스폰서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대구 섬유산업 발전방안인 ‘밀라노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어 우리 고장에도 언젠가 의상박물관이 세워지리라는 꿈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우리 고장에 섬유박물관 건립이 추진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섬유의 완성이 단순한 기계와 천이 아니라 ‘사람이 입는 옷’과 패션에 의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섬유박물관내 소프트웨어 구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섬유패션 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꿔 이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패션 박물관이 우리 고장에 들어선다면 지금 이 순간 패션디자이너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들이 더 멋지고, 힘찬 기운을 얻을 것만 같다.

‘대구 패션박물관’, 나만의 꿈일까.

박동준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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