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향응파문 확산]흔들리는 민정수석실

  • 입력 2003년 8월 8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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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충북 청주 술자리 향응 사건에 대한 부실조사의 원인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해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권력 내부를 감시하는 사정기관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민정수석실의 끈끈한 ‘동지애’=민정수석실에는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 아래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 박범계(朴範界) 민정2, 이석태(李錫兌) 공직기강, 양인석(梁仁錫) 사정, 황덕남(黃德南) 법무비서관 등 5명의 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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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이호철 비서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이지만 권력기관에 대한 ‘자체 사정’을 담당하는 이호철 민정1비서관은 이 분야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셈이다. 운동권 출신인 이 비서관은 ‘사람 좋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법조나 사정 업무 경험이 전혀 없어 조직적인 내부감찰을 지휘하기 어렵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 수석도 법조인 출신이기는 하지만 변호사 업무만 했을 뿐 검사 출신이 아니어서 수사 경험은 전혀 없다. 정치적 감각도 떨어지는 편이어서 양 전 실장 파문과 같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상황 판단과 대응이 늦거나 일반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관계자들의 이 같은 ‘경험 부족’에다 냉정한 법 논리보다는 ‘대선 동지’라는 온정주의적인 사고가 겹쳐 부실조사 논란이 가중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양 전 실장의 술자리 파문에 대한 조사가 2차에 걸쳐 이뤄졌는데도 계속 의혹을 남긴 것은 청와대 근무자의 경우 일반인보다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데도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식의 동정론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안이했던 ‘청탁 의혹’ 해법=청주 향응 2차 술자리 성격을 규명하는데 핵심 사안이었던 ‘청탁 의혹’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접근방식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당사자 진술만을 근거로 K나이트클럽 소유주인 이모씨와 오원배 전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의 청탁은 있었지만 양 전 실장은 듣기만 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와 검찰 경찰 등의 자체조사 결과에서도 청탁 의혹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의 1차 조사 때 ‘청탁’이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던 만큼 2차 조사에서 이와 상반되는 진술이 나왔으면 당연히 청탁의혹에 대한 검경의 수사를 의뢰했어야 했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은 “양 전 실장이 실제 청탁을 하거나 부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바 없으므로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수사의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미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난 관련자들의 진술을 2차 조사 때도 그대로 믿어준 것이다.

수사의뢰 문제와 관련해 민정수석실은 2차 조사 결과 발표 때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날 경우엔 수사당국이 수사할 몫이다”라는 의견을 낸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의혹을 밝혀야할 권력 사정기관으로서 책무를 방기한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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