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義人’ 홍남순변호사 5·18보상금 거부한채 투병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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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쓰러진 홍남순 변호사가 16일 광주시립 인광치매병원에서 둘째 딸 광숙씨의 간호를 받고 있다.-광주=정승호기자
뇌출혈로 쓰러진 홍남순 변호사가 16일 광주시립 인광치매병원에서 둘째 딸 광숙씨의 간호를 받고 있다.-광주=정승호기자
16일 오전 광주 광산구 삼거동 광주시립인광치매병원 2층 입원실.

이틀 후면 5·18 민주화운동 23주년이 되지만 이 운동의 주역이자 ‘광주의 의인(義人)’으로 불리는 홍남순(洪南淳·91) 변호사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멍한 표정으로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2001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홍 변호사는 지금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사람을 전혀 알아볼 수 없고 과거에 대한 기억도 못하는 상태. 평생을 민주와 인권을 위해 살아온 노(老)투사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 처지의 홍 변호사가 ‘5·18 보상금’ 수령마저 거부한 것으로 밝혀져 감동을 더하고 있다.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2000년까지 4차례에 걸쳐 보상이 이뤄져 전국에서 5·18 관련자 4312명이 2283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정부에 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 사이에 보상금 얘기가 나오면 ‘소신껏 참여한 일에 무슨 보상이냐’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홍 변호사의 막내아들 영욱(榮昱·42·사업)씨는 “주위에서 이제 명예회복도 됐으니 보상금을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면 ‘변호사를 하면 됐지 돈은 무슨 돈이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둘째딸인 광숙(光淑·54)씨는 “98년에 시청 직원들이 몇 차례 집으로 찾아와 보상금을 신청하라고 했을 때도 ‘없는 사람들 도와줘라’며 돌려보냈다”며 “아버지가 돈을 받지 않은 것 때문에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지켜본 홍 변호사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지만 무등산처럼 소박한 인간미를 지닌 분이기도 했습니다.”

68년부터 홍 변호사의 사무장으로 일한 정광진(丁廣鎭·63)씨의 말이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유신시절 33건의 긴급조치위반사건 변론을 맡는 등 70년대 민권운동가로 활동해온 홍 변호사는 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시민군 진압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50여명의 수습대책위원들과 함께 계엄군사령관과 담판을 벌였다.

무기 회수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자 그는 광주의 긴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을 만나러 서울로 가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광주 상무대 군 영창으로 끌려간 그는 69일 동안 감금돼 “학생들을 사주한 사실을 시인하라”며 군 수사관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는 80년 10월 육군 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중요업무종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지휘관 확인과정에서 15년으로 감형됐다가 81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모아둔 재산이 없었던 탓에 가족들은 85년 8월 복권돼 변호사 자격을 회복할 때까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제23주년을 맞아 18일 광주에서는 정부 기념식을 비롯해 다채로운 추모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날 오전 11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에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대철(鄭大哲) 민주당 대표, 강금실(康錦實) 법무부장관,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 유족을 비롯한 5·18 관련단체 회원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개최된다.

광주=김 권기자 goqud@donga.com

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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