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공정위 전 위원장 구속, "10억 시주라니…"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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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표정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은 18일 이남기(李南基) 전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사실이 알려지자 당혹스럽고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 전 위원장의 혐의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면서 허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단순히 이 전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공정위의 도덕성과 위상에 씻기 어려운 타격을 주었다”며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졌고 앞으로 기업을 어떻게 조사할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전 위원장에 대한 ‘동정’이 거의 없는 것도 경제관료 사회에서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한 과장은 “위원장 재직 때 (공정위) 안에서도 물의를 일으키더니 바깥에서도 그런다”면서 “솔직히 오래 전부터 내부에서도 평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 놀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은 “공정위에 몸을 담고 있으므로 차마 할 수 없는 얘기도 많다”며 “과거에 이 전 위원장과 함께 근무했던 다른 부처 고위 관료에게 연락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뼈있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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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찰 10억기부 강요 혐의 확인"

하지만 이 전 위원장 때문에 공정위 위상이 추락하고 공무원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될 위기에 놓인 데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사무관은 “한 개인의 비리 의혹 때문에 공정위의 모든 공무원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직원들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검찰 수사와 별도로 이 전 위원장 재직시 비리혐의에 대한 조사를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권성옥(權成玉) 공정위 감사담당관은 “이 전 위원장이 금품수수의 대가로 SK텔레콤과 KT의 기업결합 심사과정에 관여했는지와 부하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렸는지 등을 집중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불교계 시주 사례는…

이남기(李南基)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SK측에 서울 모 비구니 사찰에 현금 10억원을 시주하도록 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알려지면서 불교계 안팎에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시주는 스님들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나 물품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큰 절에서 대형 불사가 있는 경우 거액의 시주가 기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부동산이 보통이고 현금 시주는 드물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시인 백석(白石)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씨(1999년 작고)가 1000억원 상당의 요정 대원각을 법정(法頂)스님에게 시주해 도량(道場)으로 바뀌었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수행질서에 맞지 않는다며 10년가량 김씨의 시주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시절 인연”이라며 수락했다.

2001년 경남 해인사가 높이 80m의 청동대불을 지으려고 했던 것도 한 독지가가 65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내놓겠다고 해 시작됐다. 당시 여론의 거센 반대와 독지가의 갑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해인사 ‘어른’들의 결단으로 불상 건립이 백지화 됐다.

또 1990년대 초 대구 동화사 불상 건립에 모건설회사가 80억원을 시주한 것은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이번 10억원 현금 시주는 불사를 할 때 덕망 높은 인사가 연분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시주를 받는 방식인 ‘화주(化主) 시주’ 형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찰 신도회장인 M씨가 경기 용인시에 짓고 있는 100억원 규모의 승려 노후 복지시설 건립자금을 SK K사장에게 시주받은 것. 그 과정에서 이 사찰 주지스님과 40여년에 걸쳐 친분이 있는 이 전 위원장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찰 관계자는 “시주금은 모두 건축자금으로 사용했으며 SK 명의로 영수증 처리했다”며 “검찰이 제3자 뇌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불교 조계종(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시주금은 모두 복지시설 건립에 썼으며 회계장부 기록과 영수증 발행 등은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며 “제3자 뇌물 운운하며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건을 언론에 공표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공개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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