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의 중심은…인사동- 세종로 사거리?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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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을 표시하는 표석들. 왼쪽부터 종로구 인사동의 중심표석(네모꼴 모양·1896년 추정), 세종로사거리 교보빌딩 모퉁이의 도로원표(1914년),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옆의 도로원표(1997년). -박광민기자
서울의 중심을 표시하는 표석들. 왼쪽부터 종로구 인사동의 중심표석(네모꼴 모양·1896년 추정), 세종로사거리 교보빌딩 모퉁이의 도로원표(1914년),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옆의 도로원표(1997년). -박광민기자

며칠 전 국립지리원에 전화를 걸었다.

“서울의 중심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까?”

국립지리원 관계자는 “서울의 땅이 사각형이거나 원형이라면 어디가 중심 지점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 파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해가 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서울의 중심을 표시했던 표석(標石)이 남아 있다면….

종로구 인사동 194의 4.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태화관(현재 태화빌딩) 바로 옆 하나로빌딩 화단에 조선시대 중심 표석이 있다. 표석 옆엔 ‘여기 놓인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중심 지점을 표시한 돌로 1896년에 세웠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서 있다.

중심표석은 가로 세로 각 60㎝, 높이 40㎝ 정도. 표석 모퉁이엔 8각기둥의 돌 4개가, 그 옆엔 왕족과 귀족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했던 계단 모양의 하마석(下馬石)이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8각기둥은 서울의 4개 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과 4대문을 뜻한다.

이 중심표석은 이곳 외국인 선교사 집 마당에 있었다. 1981년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앙교회가 집을 헐고 하나로빌딩을 짓는 과정에서 사라질 뻔했다. 표석을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주광섭(朱廣燮·60) ㈜하나로미술 대표.

“그 돌이 서울의 중심표석이라는 말이 예부터 있었죠. 하나로빌딩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보니 중심표석과 8각기둥 돌 8개, 하마석 4개가 있었습니다. 다음에 보니 8각기둥 돌 4개와 하마석 3개가 없어졌더군요. 나머지라도 잘 보관하려고 지금의 화단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원래 위치는 지금 있는 곳에서 15m 정도 떨어진 빌딩 한가운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심표석인지에 대해서는 고증이 필요하다. 중심표석이라고 전해져 왔지만 표석에 아무런 내용이 새겨져 있지 않고 구체적인 관련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중심표석과 다르지만 서울 도심엔 도로 원표(元標)가 있다. 원표는 서울과 지방도시간 거리를 재기 위한 기점(起點)에 세운 이정표. 일종의 중심표석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도로의 기점은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돈화문 앞이었다.

1914년 일제는 세종로사거리(충무공 이순신 동상 자리)로 기점을 바꾸어 원표를 설치했다. 이 원표는 1935년 세종로사거리 북동쪽 모퉁이로 옮겨졌다. 교보빌딩 모퉁이 ‘칭경기념비전(고종 즉위 40년 기념비)’ 바로 앞이다.

정부는 1997년 도로 기점을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옆으로 바꾸고 원표를 새로 만들었다.

창덕궁 앞, 인사동, 세종로사거리, 태평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시대에 따라 서울의 중심도 조금씩 바뀌어온 셈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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