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모 몫은 기다려 주는 것" 자녀교육기 쓴 김정명신씨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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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자퇴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김정명신씨는 1년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김정씨는 “남매와의 관계가 힘들게 느껴질 때 일정한 거리를 두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딸의 자퇴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김정명신씨는 1년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김정씨는 “남매와의 관계가 힘들게 느껴질 때 일정한 거리를 두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엄마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아파트 옥상에 올라 둥근 달을 보며 빌었다.

‘올 한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두 아이 모두 좋은 담임 만나게 해주세요.’

엄마의 기도 덕분인지 아들 동원이(19)는 수월하게 커주었다. 서울 대원외국어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2학년에 재학중이다. 딸 동이(17·가명)는 부모 속을 꽤나 태웠다. 3년간 학교를 다니네 마네 엄마와 씨름하다 고교 1학년을 마치고 올 2월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엄마 김정명신씨(47)는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10년 넘게 교육 운동을 해왔다.

‘모범생’과 ‘문제아’를 함께 키우고 있는 교육 운동가에게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아들에 대해서는 “강남에 살면서 과외도 시키지 않고 외고를 보냈다”며 부러워한다. 끝내 학교를 그만둔 딸을 보고는 “둘 다 잘 되기 힘들다면 아들이 모범생인게 낫지 않느냐”고 위로한다. “엄마가 운동가라고 민주적으로 대해주니 빗나간 것 아니냐”고 혀를 차기도 한다. 김정씨는 이렇게 대꾸한다. “아들도 민주적으로 키웠다.”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답하듯 김정씨는 남매를 키우며 겪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제목은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 부제는 ‘길들여지지 않는 아이를 위한 변명’. 제목과는 달리 큰아이 대학 입시 성공기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주문에 책을 내게 됐다고 했다.

● 엄마 꾸짖는 아들

-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묻겠다. 정말 과외를 시키지 않았나.

“아들이 초등학교 때 집 근처 ‘해법산수교실’에 데려갔더니 아들이 ‘엄마는 교육 운동 한다면서 자식을 이런 곳에 데려오느냐’고 하더라. 아들은 시종일관 ‘학교에서 한번에 공부하면 될 것을 왜 학교와 학원 두 곳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들이 중학생 때 아들 또래 아이를 둔 이웃의 엄마가 영어를 3년 정도 봐 주었는데 그 덕을 많이 보았다.”

- 집에서 부모가 공부를 봐주는 집도 있는데….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시민운동을 시작해 바빴다.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상태로 학교에 보냈다.”

-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없어진 요즘은 중학교 1학년 첫 시험에 큰 의미를 둔다. 이때 성적이 대학 갈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면서 선행학습에 열을 올리는 추세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6,7등 했는데 꾸준히 성적이 오르더니 중3때는 2등을 했다. 특목고에서도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아들은 2월생이어서 우리 나이로 일곱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4, 5학년 될 때까지 또래보다 덩치가 작았다. 지금은 키가 184㎝다. 학부모들이 2월생인 아이들을 일부러 아홉 살에 학교에 보내고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에 열을 올리는데,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아들이 특목고에 들어갈 무렵에는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 산정에서 불리해 서울대에 가기 어렵다며 무더기로 자퇴하던 시기였는데….

“큰 아이는 평소 책 한 번 들춰보지 않다가 시험 때만 벼락치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특목고는 체벌도 없다고 해서 내가 권유했다. 고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고교도 과정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교사 폭력에 상처받은 딸

사람들은 김정씨네 큰아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그의 소신있는 교육관에 솔깃하다가도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딸을 보면서 다시 의혹을 갖는다. 말썽없이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명문대학에 들어가 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평범한 부모들에게 김정씨의 자녀 교육은 ‘절반의 성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이 책의 주인공인 딸 동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동이가 모범생인 오빠에게 치여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아니다. 남매는 사이가 좋다. 공부는 딸이 더 잘했다. 오빠가 쳐다보지도 않는 학습지까지 탐을 내며 공부하고 싶어 애를 태울 정도였다. 고교때 수업을 빼먹고 방황하는 동안에도 모의 수능시험에서는 2등급을 유지했다.”

- 그럼 결국 학교 탓인가.

“학교에서 마주치는 비민주적인 관행에 딸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변해갔다. 중2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아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며 현실과 쉽게 타협했고 딸은 끝까지 자기 신념을 고집했을 뿐이다. 아이들의 성향이 다르다.”

- 비민주적인 처사란….

“학교 급식 때 아이가 좋아하는 닭튀김이 나왔다. 교사에게 ‘치킨 한 개만 먹는 거예요’ 했더니 ‘그런 걸 왜 묻느냐’며 따귀를 때렸다. 딸아이 반에 장애아가 있었는데 담임이 지도하면서 힘들었던 모양이다. ‘너네 부모들은 좋은 사람들인 가보다. 장애아랑 한 반에서 공부해도 가만히 있고’ 하더란다. 체육시간이 끝난 후 체육복을 바로 갈아입지 않았다고 머리채를 잡힌 적도 있다.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 그래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많다.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돌아오면 나는 ‘오죽하면 교사가 매를 들었을라고’ ‘아이가 맞을 짓을 했겠지’ 했다. 하지만 딸이 그러더라. ‘엄마, 세상에 맞을 짓이란건 없어’ 라고.”

동이는 한겨울에 추운 스타킹 대신 따뜻한 바지를 입고 싶어했다. 꼭 끼는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지정된 날짜에 따라 교복을 갈아입게 했지만 아이는 체감온도에 맞추어 입길 원했다. 엄마 눈에 동이는 정의감과 개성 및 창의성은 갖추었지만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에서는 부적응 학생일 뿐이었다.

동이가 고1 때 김정씨는 체벌도 없고 분위기도 좋다고 소문난 학교를 찾아 강북으로 이사했다. 소문대로 학교 분위기는 훨씬 밝았다. 하지만 동이는 한 학기쯤 다니다 다시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학교는 침몰하는 배고, 그래서 나 자신은 구명정을 타고 나올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학교를 고집하다가는 아이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딸의 자퇴는 부모이자 교육 운동가인 김정씨에게 두 배의 아픔을 주었다. 10여년간 즐거운 학교를 만들겠다며 시민단체에서 일해온 엄마의 성과를 부정해버린 셈이다.

“아들은 딸에 비해 수월하긴 했지만 역시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의 피해자라는 생각이다. 아들은 시험에 필요한 만큼만 공부했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는 않았던 것같다.”

● 자녀교육 해법은 인내심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는 엄마로 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원에 가는 대신 집에서 공부하며 자주 책상을 뜨는 아이에게 “너는 무슨 화장실에 그렇게 자주 가니” “물은 왜 그렇게 자주 마시러 나오는 거야” 하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절대 안 돼”라는 단정적인 말로 마음을 닫지는 않았다.

여름 휴가때는 아이들 손을 붙들고 문화 유적지를 돌며 교육적인 효과를 노리기보다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수영장에서 실컷 놀게 해주었다. 컴퓨터를 끼고 사는 아이들을 보고 코드를 뽑는 대신 거실에 내놓은 뒤 ‘사이좋게 컴퓨터 나눠 쓰는 방법’이라는 룰을 정하는 식이었다.

동이의 친구들은 그런 동이를 부러워했다.

“우리 엄마는 과외비는 아끼지 않으면서 여행 가겠다고 돈 달라고 하면 안 주셔. 결국 엄마가 쓰고 싶은데만 돈을 쓰는 거야.”

교육 운동가라고 부모 노릇이 쉬울까. 학교를 그만두고 오전 내내 잠옷 바람으로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딸을 보면 속이 뒤집어 질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연락도 없이 외박하거나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 엄마보다 더 나쁜 성적표를 받아온다. 정말이지 엄마 노릇 사표 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면 당황한 학부모들은 김정씨를 찾곤 한다. 김정씨는 그때마다 “그저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김정씨 역시 딸 동이를 끝없이 기다려줄 생각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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