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해남 간척지 싸고 철새부르기-내

  • 입력 2003년 3월 31일 2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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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철새를 불러 들이고 다른 한편에선 내하고….’

동아시아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부상한 전남 해남에서 이같은 대조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어 철새보호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의 경우 대규모 인공호수인 고천암호에서는 주민들이 철새들을 위한 쉼터 조성에서 나서고 있는 반면 영암호 인근에서는 철새 서식환경을 파괴하는 개답(開沓)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린 철새와 함께 산다=해남군 황산면 쌀전업농회 등 고천암 간척지 인근 농민 38명은 올해부터 간척지 벼논 11만4000평에 ‘고천암 환경공생형 쌀 재배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98년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150만평의 고천암호는 해마다 가창오리 등 30만마리가 넘는 철새가 둥지를 틀고 있다.

고천암 쌀 재배단지는 기존의 환경농업과는 달리 ‘철새와 농민이 공생한다’는 차원에서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농업형태.

이에 따르면 농민들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벼를 재배한 뒤 수확 논에 물을 채워 놓는 ‘무논’을 만드는 등 친환경 서식지를 철새에 제공한다. 철새들은 무논에 떨어진 낟알을 주어 먹으면서 잡초를 제거하고 천연유기질 비료인 배설물을 남겨 농민들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

농민들은 올 가을 고천암 갈대축제를 개최하면서 무논을 생태관광의 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이 곳에서 생산되는 쌀을 ‘철새가 먹는 친환경 쌀’로 적극 홍보해 판매할 계획이다.

고천암 생태추진본부 박상일 상임의장은 “수확 후 논에 15㎝ 정도의 물을 채워 놓으면 지렁이와 논고동, 미꾸라지 등이 살게 돼 다양한 종의 철새들이 몰려 올 것”이라며 “철새에 피해의식만 가졌던 농민들이 철새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철새 내하는 개답공사=100만평이 넘는 광활한 습지에 황새와 저어새, 두루미 등이 찾는 ‘철새의 낙원’이었던 마산면 당두리 간척지는 최근들어 희귀 철새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연사랑 메아리’ 등 해남지역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현상을 농업기반공사 영산강사업단측의 무분별한 개답공사 때문이라며 환경친화적 간척지 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영암호 일대에서 호수의 흙을 파 바둑판식으로 논을 조성하면서 갯고랑이 메워져 철새들의 서식환경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논 조성공사를 할 때 △호수 흙 퍼올리기 금지 △대체 인공습지 조성 △콘크리트 직 수로 건설 중단 △뜬섬 모래 채취 금지 등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연사랑 메아리 전명현 사무국장은 “환경파괴적 개답공사로 종 다양성 먹이사슬에 의존하는 희귀철새는 사라지고 낟알을 먹는 철새들만 늘어나고 있다”며 “농업기반공사측에 친환경적인 공사를 요구했으나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업기반공사 영산강사업단측은 “홍수 예방차원에서 호수의 홍수위보다 낮은 곳에서 최소한의 흙을 파내고 있고 대형 개답구간에서는 습지를 훼손하지 않고 공사를 하는 등 설계단계부터 친환경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해남=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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