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야생노루 ‘수난시대’…"한해 1000마리 피해"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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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기슭에서 발견된 야생노루 밀렵현장. 밀렵꾼들이 남긴 노루 가죽 등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제주=임재영기자
한라산 기슭에서 발견된 야생노루 밀렵현장. 밀렵꾼들이 남긴 노루 가죽 등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제주=임재영기자
멸종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한라산 야생 노루들이 최근 밀렵이 성행하면서 또다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제주지역에는 한때 노루가 멸종됐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1990년대 초부터 노루 보호운동을 적극적으로 편 결과 현재는 3000여마리가 야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밀렵 현장▼

2일 오후 야생 노루 밀렵 경험자의 제보를 받고 찾아간 한라산 기슭의 남제주군 저지대 야산.

밀렵꾼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된 야생 노루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 있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뜯어내는 순간 악취가 심하게 풍기면서 7마리분의 노루가죽이 쏟아져 나왔다.

10m 떨어진 곳에서는 2마리분의 노루가죽과 내장 일부가 노란 마대에 담긴 채 나뭇가지로 덮여 있었다.

밀렵꾼들이 한라산 야생 노루를 엽총으로 사살한 뒤 가죽과 내장을 따로 포장해 버린 것이었다. 노루가죽의 상태 등으로 미뤄볼 때 밀렵이 자행된 것은 20일 전쯤으로 추정됐다.

동행한 밀렵 경험자 A씨(41)는 “며칠 전 육지에서 원정 온 밀렵꾼이 노루 5마리를 잡은 뒤 돌아갔다”며 “엽총 사냥꾼의 상당수가 노루를 잡아본 경험이 있거나 노루고기를 맛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겨울에는 한라산에 많은 눈이 쌓이면서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내려온 노루들이 밀렵꾼의 표적이 됐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노루 밀렵꾼들은 보통 3, 4명이 한 조가 돼 노루가 살 만한 지역을 정한 뒤 1명이 사냥개와 함께 노루를 몰면 나머지는 40∼50m 앞에 있다가 몰이꾼을 피해 고지대로 뛰는 노루에 엽탄을 난사한다.

이들 밀렵꾼은 멧돼지 사냥용 실탄을 사용하고 있으며 밀렵된 노루는 보신용으로 쓰이는데 1마리당 고기는 50만∼60만원, 뼈는 50만∼60만원 등에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는 것.

▼밀렵 단속▼

최근 제주지역에서 노루 밀렵이 성행하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노루 밀렵행위는 10건 정도 단속되고, 밀렵을 위한 덫과 올무가 480여개 수거됐지만 이는 실제 밀렵 건수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밀렵 감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한수렵협회 제주도지부 김덕종(金德鍾·41) 밀렵감시단장은 “밀렵 등으로 희생되는 노루가 한해 1000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감시단원이 7명에 불과한데다 사법권도 없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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