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전한가]<下>승무원 안전교육 분기별 10분뿐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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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공사 직원 추이(단위:명)
1997년 3,143
1998년 3,079
1999년 2,939
2000년 2,731
2001년 2,681
2002년 2,538
2003년 2월21일 현재 2,503
자료:서울 지하철공사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서대문구 충정로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임윤정씨(26·여)는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이동수단을 버스로 바꿨다.

임씨는 “불에 타 흉물스러운 전동차를 보니 지하철을 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당분간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다음날인 19일 서울의 지하철 승객은 평소보다 13만명가량 줄었다.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예상보다 적은 감소 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하철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며 “단순히 소방시설을 확충하는 것 외에 지하철 직원과 승객들의 ‘안전 불감증’을 치유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제2, 제3의 대형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형식적인 비상시 행동요령=전국의 지하철 운영기관은 화재 등 비상시에 대비한 직원의 행동요령(매뉴얼)을 갖고 있다.

그러나 승무원과 역무원의 수, 역사의 깊이 등 근무여건이나 주변 상황이 다른데도 매뉴얼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어서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가 어렵다.

또 매뉴얼 내용도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예컨대 터널 안에서 불이 났을 때 승객을 선로에 대피시키기 위한 요령으로 서울지하철 두 공사의 매뉴얼은 ‘승무원실 비상문을 이용해 궤도 내로 안전하게 유도, 하차시킨다’는 원칙만 정하고 있다.

승무원과 역무원이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훈련도 형식적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4개월마다 한 번씩 재난대비 훈련을 하지만 소화전과 소화기 사용법을 10분 정도 교육하는 게 고작이다. 지하철공사도 갓 배치받은 기관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 대구에서도 두 전동차의 기관사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않고 사령실의 지시만 기다리다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서선덕(徐琁德·교통공학과) 교수는 “모든 매뉴얼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무 인력 태부족=설령 완벽한 매뉴얼이 있고 짜임새 있는 훈련을 한다 해도 현재 인력으로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울지하철 각 역의 평균 근무인원은 5명. 역장과 사무원을 빼면 3명이 매표 업무와 승강기 발매기 등 시설물 관리를 맡고 있는 셈이다.

부산지하철은 사정이 더 열악하다. 오전 5∼9시에는 당직 근무자와 매표원 등 2명만이 역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각 지하철 운영기관은 경영 합리화를 내세워 역무 인력을 계속 줄이고 있다. 서울지하철공사의 경우 1997년 3143명이던 역무직원이 현재 2503명으로 20%나 줄었다.

인천지하철공사 관계자는 “98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지금은 전동차 운행을 위한 최소 인력만 남았다”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직원·승객 교육 필수=무엇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승객들은 물론 역무원들조차 대형사고에 대비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창운(李昌雲) 철도교통연구실장은 “모든 시스템이 완벽해도 반복훈련을 하지 않으면 비상시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전동차 안에 설치된 액정화면을 이용해 소화기 사용법과 출입문의 수동 개폐기 조작요령 등을 숙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대 김태환(金泰煥·도시방재학) 교수도 “모든 것을 국가가 해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국민 스스로 사고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대구 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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