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헬기 합천댐 추락]"아, 폴란드 기장님…"

  • 입력 2003년 1월 19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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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장 유병욱씨
부기장 유병욱씨
시험비행 중 추락한 산불진화용 소방헬기의 폴란드인 기장과 한국인 부기장 등 2명이 기민한 판단력과 침착한 위기대처로 탑승자 5명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들은 물에 빠져 실종됐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사고발생 후 무려 16시간이 지난 뒤에야 생존자들을 구조하는 등 늑장 대처로 비난을 받고 있다.

▽사고순간=18일 오후 4시경 경남 합천군 봉산면 합천호 상공에서 대구소방본부 소속 소방헬기인 ‘달구벌 2호’가 자동비행조정장치를 시험하기 위해 ‘제자리 정지 비행’을 하던 중 갑자기 기체가 중심을 잃고 우측으로 기우뚱했다. 순간 프로펠러가 수면을 치면서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고 이어 오른쪽 문이 떨어져 나갔다.

이때 부기장 유병욱(兪炳旭·39·소방위)씨가 “침착합시다”라고 큰소리로 외친 뒤 뒷좌석에 탑승해 있던 5명에게 “부서진 오른쪽 문을 통해 물에 뛰어들라”고 지시했다. 탑승자 5명이 차례로 물에 뛰어든 뒤 유 부기장도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던 폴란드인 기장 로진스키(50)와 함께 기체를 탈출했다.

이들 7명은 물에 반쯤 잠긴 채 수면에 떠 있는 기체를 잡고 있었으나 2분가량 지난 뒤 헬기는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어 이들은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생존자 정비사 장성모(張星模·40·소방장)씨는 “기장과 부기장은 사고를 당한 헬기가 추락할 때 온몸에 충격을 받아 힘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면서 “헤엄치던 도중 뒤돌아보니 그들 2명도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뭍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헬기 탑승자는 유 부기장과 정비사인 장씨 외 영국인 마이클 딕비(62·헬기설계사), 폴란드 스위드닉스사 소속 루진스키(50·조종사), 알렉(42·정비사), 스와벡(33·헬기 디자인담당) 또 다른 스와벡(31·조종강사) 등 모두 7명이었다.


▽필사의 생존 노력=헬기 추락지점에서 합천호 내 섬 지역까지 100여m를 헤엄쳐 나온 생존자 5명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공포에 떨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

옷이 물에 젖은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체온 유지를 위해 주변에서 나뭇잎을 끌어 모아 서로의 몸을 덮어주기도 했다.

이들은 사고 발생 16시간 만인 19일 오전 8시40분경 수색에 나선 구조헬기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심한 저체온 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늑장구조=대구소방본부 항공대에서 대구소방본부 상황실로 헬기 통신두절 신고가 접수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약 두 시간 뒤인 18일 오후 6시15분.

소방본부측은 오후 7시20분과 7시50분에 각각 SK텔레콤과 KTF에 탑승원들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 위치추적 여부를 문의했으나 두 시간 뒤인 오후 9시31분에야 최종 발신신호 지점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물에 빠진 뒤 이들의 휴대전화는 모두 작동불능 상태가 됐다.

구조전문가들은 휴대전화의 위치추적만 제때 됐더라면 구조작업이 훨씬 빨리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원인=소방본부 관계자는 “사고헬기에 최근 자동비행조정시스템을 설치한 후 이번에 시험비행에 나섰다”면서 “헬기제작사인 폴란드 기술진들이 탑승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해 사고헬기에 장착한 ‘자동비행조정시스템’의 결함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고헬기는 대구시가 산불진화 등의 목적으로 2001년 12월 47억1000만원에 폴란드 스위드닉스사로부터 구입한 PZA-W3A(SOKOL)형으로 최대 항속거리 737㎞, 최고속도 252㎞/h로 14명(승무원 포함)이 탑승할 수 있다. 기체와 승무원 보험으로 2억2600만원의 보험에 가입돼 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합천=정재락기자 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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