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드’ 가정 파괴…배우자-친지 명의도용 "펑펑"

  • 입력 2003년 1월 17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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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오모씨(39·여)는 지난해 10월 한 카드사로부터 자신의 카드 대금이 연체됐다는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뚜렷한 일자리가 없는 남편 강모씨(43)가 지난해 초 자신의 이름으로 10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 용돈과 유흥비로 마구 사용하고 카드 대금이 연체되면 ‘돌려막기’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 강씨가 사용한 금액은 무려 5000여만원.

오씨는 “남편이 5년 전에도 내 명의로 몰래 카드를 만들어 신용불량자가 됐다가 2년 전에야 간신히 신용불량자라는 멍에에서 벗어났는데 그때의 악몽이 재현됐다”며 9일 “남편을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에 사는 정모씨(41·여)는 함께 사는 시누이가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를 알아내 수개월 동안 대출과 할부구매로 1500여만원이나 쓴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에 신고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16일 검거된 CGV극장 폭발물 협박범의 범행 동기도 6000만원의 카드빚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카드빚’이 범죄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 가정파괴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드빚에 몰려 배우자나 친지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가족 몰래 카드를 마구 사용하면서 가족간 신뢰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것.

국내 대표적인 카드회사인 A사의 경우 최근 접수되고 있는 카드 부정사용 전체 건수 가운데 60%가량이 가족이나 친지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카드사인 B사 관계자도 “카드 도용사고 가운데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지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에는 가족과 친지가 자신의 카드를 부정 사용했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문의가 한달 평균 30여건에 이른다.

한국소비자연맹의 도영숙 부회장은 “이는 1년 전만 해도 거의 볼 수 없던 현상”이라며 “카드빚 때문에 가족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법률상담회사인 O사의 한 관계자는 “심지어 배우자의 카드빚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문의도 한 달에 서너 건 정도 접수되며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석승억(石承億) 사무총장은 “벼랑 끝에 몰린 채무자들에게 가족과 친지의 신용카드는 커다란 유혹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카드 대출액 규모는 지난해 9월말 현재 52조2861억원, 연체액은 4조8253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카드론, 카드대금 등 신용카드와 관련된 개인 신용불량자가 149만432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 신용불량자 가운데 1000만원 이상 빚진 사람은 129만3451명이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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