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칼슘 뿌린길 미끄럼 조심

  • 입력 2003년 1월 13일 19시 02분


코멘트
9일 오전 6시 반경 서울 한남대교 북단 한남고가차로 초입 지점에서 심모씨(56·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2동)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심모씨(46·서울 광진구 중곡2동)가 모는 택시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사고를 낸 심씨는 경찰에서 “눈이 쌓인 것도 아닌데 브레이크를 밟자 마치 눈길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제동이 되지 않아 추돌했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날 서울 용산경찰서에는 이 같은 교통사고가 13건이나 신고됐다. 눈이 내린 3일과 기온급강하로 내린 눈이 얼어붙었던 4일에 각각 5건, 6건의 접촉사고가 접수된 것에 비하면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눈이 전혀 내리지 않은 10∼13일 접수된 43건의 사고 가운데 90% 정도가 미끄럼으로 생긴 추돌사고였다”고 밝혔다.

4일을 끝으로 서울지역에 눈이 내린 지 열흘이 지났지만 도로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이상 미끄럼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도로 표면이 정상적이라고 착각한 운전자들이 안전거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있다가 앞차를 들이받는 접촉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미끄럼 현상의 주범은 염화칼슘. 눈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뿌려놓은 염화칼슘이 물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년에 비해 많은 양의 염화칼슘이 살포된 데다 진흙 등 불순물이 많은 중국산이 대량 사용되면서 미끌미끌한 도로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염화칼슘은 눈이나 얼음과 맞닿으면 발열반응을 일으켜 이를 녹이고 물과 섞이면서 물의 어는점을 낮추지만 습기를 머금으려는 성질 때문에 증발 속도가 느린 편이다. 따라서 도로의 수분이 녹았다가 밤새 다시 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도로가 상당기간 축축해져 있다는 것.

서울대 김희준(金熙濬·화학과) 교수는 “염화칼슘을 뿌리면 눈이 녹지만 소금기가 수분을 붙잡아 미끈거림이 생긴다”며 “수분 증발이 느려 바짝 마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염화칼슘이 예년에 비해 더 많이 뿌려지고 있는 추세. 서울시는 3일에 이어 4일 눈이 0.2㎝ 내리는 데 그쳤지만 혹한으로 도로가 결빙될 것을 우려해 서울 전역에 염화칼슘 25㎏들이 11만포대(2750t)를 살포했다.

특히 이날 살포된 염화칼슘에는 진흙 등 미세입자나 불순물이 섞인 중국산이 일부 포함돼 도로를 더욱 미끄럽게 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유일의 염화칼슘 생산업체인 동양화학제철 관계자는 “2001년 겨울 눈이 많이 왔을 때 염화칼슘이 부족하자 질이 낮으면서 값싼 중국산이 대거 수입돼 사용되고 있다”며 “현재 국내 도로에 뿌려지는 염화칼슘 중 중국산의 비율은 30%를 넘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들은 운전자들에게 “염화칼슘이 도로에 남아 수분이 증발되지 않을 경우 자동차의 제동거리가 평소의 배 이상 늘어난다”며 “염화칼슘이 남아 있는 도로는 눈이 쌓인 도로라고 생각해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