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곳을 아시나요]개화기 군사기지 화도진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47분


인천시 지정 기념물 2호인 동구 화수동 138 화도진(花島鎭)은 개화기 때 외세에 대항한 호국 의지가 서려있는 곳이다.

화도진은 1879년 고종이 설치한 군사기지로 곶(바다 쪽으로 길게 뻗쳐진 육지)의 모양이어서 ‘곶섬’으로 불리다 ‘꽃섬’이 됐다. 그 후 꽃섬을 ‘화도(花島)’로 불렀다는 게 인천 향토사학자들의 설명이다.

개화기 때 인천 앞바다에는 일본 군함 등 외국 선박이 자주 출몰했다. 고종은 인천의 중요성을 인식해 외세의 침입을 감시하려고 화도진을 설치했다.

고종은 화도진의 총책임자인 별장(別將)의 잦은 교체에 따른 경계 업무 소홀을 막으려고 임기를 30개월로 정했으며 제물포와 소래 등 인천지역 8곳의 포대를 맡게 했다.

화도진에는 병사와 함께 무기고까지 배치됐으나 외세에 관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1882년 청나라의 지원을 등에 업은 미국의 개항 요구를 받아들여 이 곳에서 ‘한미(韓美)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

김덕진(金德鎭·55) 화도진도서관장은 “당시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 조선 개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청나라와 미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조약이 체결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 화도진은 갑오경장(1894)으로 군제가 개편됨에 따라 폐지돼 모두 헐리고 말았다.

인천시는 1988년 9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화도진도(花島鎭圖)’를 바탕으로 당시 병영과 군사들이 사용하던 우물 등을 복원해 공원으로 만들었다.

주민 유재철씨(62)는 “지금은 아파트 숲에 가려있지만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화도진 언덕에 올라서면 영종도와 작약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며 “재래식 화포와 당시 병사들의 생활상 등 볼거리가 많아 손자들과 함께 가끔 찾는다”고 말했다.

무기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관에는 무기류와 집기류 등 구한말 군사 장비 6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또 공원 인근의 화도진도서관은 인천지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외세의 개항 압력을 둘러싼 근대사의 전개과정과 화도진의 역사적 의의 등을 가르치는 ‘1일 향토교실’을 열고 있다.

동구는 90년부터 공원에서 길놀이 풍물공연 등 주민들이 참가하는 민속행사와 인천의 개화기 모습을 담은 사진전 등 ‘화도진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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