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확성기 시위' 직장인들 "시끄러워 일 못해요"

  • 입력 2002년 8월 16일 18시 40분


서울 중구 다동의 한 시위현장 가로수에 시위 주최측이 매달이 놓은 확성기 - 신석교기자
서울 중구 다동의 한 시위현장 가로수에 시위 주최측이 매달이 놓은 확성기 - 신석교기자
화염병과 최루탄은 보이지 않는다. 시위 참가자 숫자도 몇 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온 도심이 하루종일 소란스럽다. 행인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물론이고 인근 빌딩의 직장인들이 업무를 제대로 못볼 지경이다. 확성기를 이용한 ‘소음시위’ 때문이다.

▽도심 시위 현장〓16일 오후 서울 중구 H은행. 영세 상인 50여명이 은행 앞 도로에서 경매로 날리게 된 임차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며 거의 한 달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H은행 각성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 놓았을 뿐 은행을 점거하거나 영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만 봐서는 시위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

시위에 참가한 이모씨는 “경찰로부터 집회 허가를 받아 한 달째 시위하는 중인 데 은행을 점거하고 기물을 때려부수는 식의 과격한 방식을 쓰지 않으면서 우리 주장을 평화적으로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근 사무실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시위대가 가로수에 매단 확성기에서 운동권 가요와 구호가 하루 종일 반복되는 바람에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다는 것.

더구나 확성기 소리는 고층빌딩 밀집지역에서 공명현상을 일으켜 인근 빌딩은 물론이고 꽤 멀리 떨어진 빌딩의 근무자들까지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

인근 빌딩의 한 여직원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집회 및 시위는 161건. ‘확성기 시위’는 서울과 정부과천청사, 시청과 구청 등 관공서 주변에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된다.

일부 시위현장에서는 계속된 ‘소음시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자 참가자가 확성기로 유행가를 불러대는 ‘전국노래자랑형’ 시위도 가끔씩 생긴다.

▽관계 법령은〓환경부가 90년 제정한 ‘소음 진동 규제법’은 확성기 사용 시간(1회 2분 이내, 15분 간격)을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50만원)를 부과토록 규정돼 있다.

행상인이 차량에 부착한 확성기를 이용해 물건을 팔거나 교회가 종소리를 녹음해 확성기로 트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시위 현장의 확성기 소음에 적용한 사례는 없다.

환경부의 신총식 생활공해과장은 “관계 부처 협의에서 시위 현장의 소음을 단속하는 문제를 논의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경찰의 지도로 대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이 점거 농성 투석 등 물리적인 시위가 아닌 ‘소음시위’에 대해 단속을 벌인 경우는 없다.

▽소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사람이 보통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60데시벨(㏈), 크게 들리는 전화 벨소리는 70㏈ 수준. 전문가들은 평균 소음이 70㏈ 이상이면 말초혈관이 수축하기 시작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성균관대 부설 강북삼성병원 신영철(申英澈·정신과) 교수는 “소음이 일시적이면 별 문제가 없지만 몇 시간 이상 계속되면 업무 생산성이 떨어지고 신체에 해가 된다”며 “특히 심장병 환자는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위 현장의 소음도 아파트나 도로 공사장 주변의 소음과 마찬가지로 증빙자료를 첨부해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02-2110-6981)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피해 구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수도권 주민 60% "소음공해 심각"▼

수도권 주민의 60% 이상이 심각한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16일 한국갤럽과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에 의뢰해 서울 인천 수원 등 수도권 3개 도시와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포항 등 지방의 6개 도시 주민 4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음인식도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주민의 62.6%가 ‘소음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주민 중 81%가 ‘심각한 소음에 시달린다’고 답해 소음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지방 6개 도시의 주민들 중 48.8%가 ‘소음이 심하다’고 응답했는데 이 가운데 주민의 소음인식 정도가 가장 심한 곳은 광주 북구 우산동(79%)으로 지적됐다.

이밖에 생활환경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수도권 주민의 34%와 지방도시 거주자의 51%가 불만을 표시했다. 만족도가 가장 낮은 곳은 수도권의 경우 신도림동(24%), 지방도시 중에는 대구 중구 동성동(22%)이었다.

반면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은 수도권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92%), 지방에서는 대전 중구 대흥2동(86%)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환경문제에 대해 수도권 주민은 쓰레기(35%), 소음 및 진동(34%), 대기오염(19%)을 꼽았으며 지방은 소음 및 진동(32%), 쓰레기(29%), 대기오염(15%) 등의 순으로 각각 답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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