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 "환경 지키는 것도 중생구제의 길"

  • 입력 2002년 6월 21일 19시 04분


사진=박영대기자
사진=박영대기자
《30여년간의 수행과 곧은 소리로 불교계 안팎에서 신망이 높은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收耕·53) 스님. 하지만 스님이 있는 곳은 고요와 정적이 흐르는 산사의 선방이 아니다.

19일 오전 북한산 송추역 부근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현장. 산은 평소의 ‘얼굴’이 아니었다. 울창한 나무로 맞아주던 푸르고 생기있는 얼굴이 아니라 민둥산과 포크레인, 여기저기 쌓인 돌더미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 한쪽에 ‘북한산 살리기 정진 도량 천하제일문’이라고 쓰여진 입구가 나타났다. 사찰, 아니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농성장의 일주문(一柱門)인 셈이다. 가건물과 천막, 각종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30여년 선방 수좌로 사셨는데….

“선방에만 선(禪)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장소가 어디든 수행자가 수행한다면 그곳이 선방이죠. 무엇보다 여기까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 자체가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습니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는 경기 고양시∼의정부∼서울 노원구 상계동∼경기 남양주시를 잇는 36.3㎞의 8차선 도로. 지난해말 공사가 시작되자 불교계와 환경·시민 단체들은 북한산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대체 노선의 개발 등을 주장하며 실력 저지에 나섰다. 반면 건설교통부 등 정부와 시공회사는 예정대로 도로 건설을 진행할 계획이다.

조계종은 2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승려와 불자 등 1만여명이 참여하는 범불교도 대회를 열고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건설 중지를 촉구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시공사측은 12일 의정부 지원에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을 상대로 건설 구간 내에 있는 농성 현장에 대한 ‘건축물 철거 및 토지인도 단행 가처분신청’을 제출한 바 있다.

-선방을 나와 농성장에 계신 이유는 뭡니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게 중의 도리입니다.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은 30여개의 사찰 뿐 아니라 결국 수도권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는 일입니다.”

-농성장 분위기가 일반 분규 현장과 비슷합니다. 불교적 해법은 없습니까.

“이 농성장에서 줄곧 그 해법을 찾아왔습니다. 특히 ‘불교적’ 해법을. 몇 개월전 편의점에 들러 물건을 사는 데 시공 건설회사의 계열사 제품이 보이는 데 화가 치밀더군요. 허어, 내 눈과 마음에 미움이 차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일까. 스님은 농성장 내에 4, 5평 정도의 작은 선원을 만들고 ‘철마선원(鐵磨禪院)’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농성 때문에 모든 사물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쇠를 단련하듯 마음을 닦으라는 의미다.

농성장 뒤 한 간판에도 수경 스님의 고민이 담겨 있다.

‘거룩한 부처님이시여. ○○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이끌어주십시오. 북한산을 파괴하지 않도록 ○○그룹에게 지혜를 주시고, 온 불자가 ○○그룹을 사랑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환경운동에 전념하시게 된 이유는 뭡니까.

“실상사 주지인 도법 스님이 2년전 지리산 댐 건설 반대에 힘을 보태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내 공부도 못했는데 무슨 세상 일을 하겠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도법 스님이 ‘땅 한삽만 파도 무수한 생명이 죽는 데 지리산에 댐이 생기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겠냐. 정말 불교가 이런 상황과 무관하냐’고 말하더군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죠. 나를 포함한 우주가 한몸이고, 어느 하나 상처를 입지 않도록 자비심을 가져야 합니다. 환경이 병들면 결국 인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불교계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는 대형 불사(佛事)를 벌이면서 환경 운운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무엇보다 불교계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적하신대로 불교계가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미리 예방책과 대안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불교계의 물량 위주의 대형 불사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네 불사는 되고, 내 것은 왜 안되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죠.”

-수행 환경이 바뀌어 공부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앉아서 하는 공부는 힘들지만 ‘진짜’ 공부는 많이 했습니다. 2000년 11월 낙동강 발원지인 강원 태백시 황지에서 하류 을숙도까지 1개월간 강을 따라 순례했습니다. 왜 지리산 댐을 막아야 하는가 몸으로 알고 싶었습니다. 상류의 맑은 물이 하류에서는 똥물이 되더군요. 강물을 보면서 내 자신의 삶도 함께 봤습니다. 출가하면서 가졌던 순수한 고민과 심성이 중옷을 입고 절집에서 생활하다보니 틀에 얽매이고 과분한 중 대접으로 많이 파괴됐습니다. 부처님 법에 의지해 세상에서 이 법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으시다면.

“제가 이 도량에서 끌려나가도 북한산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양측이 대립자의 눈에서 서로를 바로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화엄경에서는 ‘삼라만상 두두물물 비로화장세계(森羅萬象 頭頭物物 毘盧華藏世界)’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 만물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양측이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계속 맞대 좋은 해결책을 얻기를 바랍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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