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추억속으로 사라진 인천의 '대표 다리'

  • 입력 2002년 5월 31일 20시 16분


“어제는 낚싯대를 메고 인천교(仁川橋·동구 송림 4동 322)를 건넜다. 우리 어린 날의 꿈을 줍던 바다는 검은 침묵에 잠겨 있고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염전 뚝길을 따라 지평을 넘는 고속도로(경인)가 창녀처럼 질펀하게 누워 있었다….”

최무영 시인이 쓴 산문시 ‘여름 엽서’의 일부분이다. 인천 출신 시인들은 인천교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에 자주 등장시켰다. 그 만큼 인천교는 인천 토박이들에게 다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천 동구 송림 4동 인근을 오가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노선 안내판에는 인천교라는 지명이 적혀 있다. 그러나 현재 인천교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실체는 없고 추억만 남아있는 다리가 인천교다.

인천을 대표하는 ‘다리’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인천교는 1957년 2월 착공돼 58년 1월 17일 준공됐다. 길이 210m, 폭 12m 규모로 당시 인천에선 제일 큰 다리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대규모 매립공사로 이 일대 갯벌이 평지로 바뀌면서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 공단도로의 일부로 사용됐다.

그러다 96년 3월 원통로∼INI스틸(옛 인천제철)간 도로 개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98년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리가 있었던 곳에는 지금 왕복 6차선 도로(인천대∼가좌인터체인지)가 놓여져 있어 다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인천 토박이라면 인천교에 대한 색바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가 놓여지기 전까지 만해도 다리 밑에는 갯고랑이 패어 있었다. 갯고랑 너머가 바로 ‘개건너’라고 하는 서곳(지금의 서구 가좌, 석남, 연희동)이다.

당시에는 송림동에서 서곳 방면으로 가려면 ‘번작리 나루’ 혹은 ‘번저리 나루’라고 불리는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을 땐 돌 징검다리로 건너고 물이 차면 나룻배로 건넜다. 인천교에 가까이 있는 나룻터를 ‘윗나루’, 밑에 있는 것을 ‘아랫나루’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동구 중앙시장(현 송현, 금곡, 송림동 일대)이 성시를 이뤘다. 개건너에는 땅콩 등 농산물을 경작하는 농민이 많았는데 나룻배를 이용해 농산물을 실고 인천 시내로 나와 팔았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40여년간 인천교 인근에서 철강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창식씨(62·대일철강 회장)는 “방학만 되면 주안염전 뚝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온 아이들이 인천교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곤 했다”며 “당시에 배를 끌던 사람이 황해도 실향민이었는데 지금도 종종 만나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사에 따르면 인천교는 6·25 전쟁 중에 군작전상 필요성 때문에 건설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경인(京仁)간 통행시간이 1시간에서 40분대로 단축됐다. 바닷물을 넘나들던 인천교 주변 갯벌은 모두 매립돼 동양 최대 규모의 물류단지인 인천산업용품센터를 비롯 유통업체인 월마트, 동구 어린이교통공원, 구민운동장 등 시설이 들어서 있다.

상전벽해란 말을 실캄케 하는 인천교.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인천인들에게는 영원히 간직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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