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판결 각종 기록…원고 1만7200명-5兆배상 요구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00분


고엽제 소송은 원고 수 1만7200여명, 소송액수 5조1000억여원, 재판 과정에서 원고 측이 낸 손해배상금 임시지급 가처분 신청 액수가 3857억원이나 된다. 10만장 이상으로 알려진 사건기록은 1t트럭 한 대 분량이다.

원고 측이 내야 하는 소송비용만도 180억여원. 항소심 등을 거쳐서도 패소판결이 확정될 경우 부담액은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1심 판결까지 걸린 기간은 32개월. 99년 9월 제기된 이 소송은 법원이 19개월의 기록 검토 끝에 재판 준비 절차를 열고 원고 1만7200여명 모두의 진료기록 제출 명령을 내리면서 속도가 붙었다.

재판부는 9번의 준비절차와 6차례 심리를 진행한 뒤 6개월 동안 판결을 놓고 고심을 거듭해왔다. 담당판사는 고엽제 사건 판결을 위해 이례적으로 다른 사건은 전혀 맡지 않았다.

양측이 다퉈온 주요 쟁점은 △고엽제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여부 △제조회사의 불법행위 및 책임존재 여부 △국가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군수물자에 제조물 책임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 △재판 관할권 △소멸시효 등이었다.

재판부는 일단 재판 관할권은 국내 법원에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원고들이 호소하는 당뇨 고혈압 등 각종 질병과 고엽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고엽제가 뿌려진 베트남 서부 밀림지대에 주둔한 한국인은 소수였다는 점, 대부분의 한국 군인이 쌀 재배지역인 베트남 동부 해안가 저지대에 파견돼 고엽제에 노출된 확률이 낮았다는 점 등이 근거. 소량의 고엽제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점을 입증할 의학보고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결국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당시 상황 등에 대한 왜곡된 정보 때문에 고엽제 피해를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다른 여러 제조체나 말라리아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을 고엽제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

원고들이 고엽제법 등에 따라 국가보훈처에 후유증 환자로 등록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 및 보상 차원일 뿐 의학적 의미의 고엽제 환자로 볼 근거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베트남전 참전자 3000명이 낸 소송에 대해 재판 시작 6년 만인 84년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지급 강제조정을 내렸을 뿐 아직까지 승소판결을 내린 전례가 없다.

다우케미컬 등은 이런 이유로 재판 결과에 자신감을 보여 원고 측이 제시한 합의안을 법정에서 거부하기도 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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