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불안하다]<2>응급실 시설-인력 태부족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51분


16일 밤 11시경 서울 강남의 C의대병원 응급실.

50개의 병상이 환자들로 꽉 찬 상태여서 환자 10여명이 입구와 복도의 간이침상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전공의 4년차인 배모씨(31)와 수련의 간호사 등 10명이 숨돌릴 틈도 없이 60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이모씨(45)는 이틀 전 교통사고로 방광이 파열되고 골반뼈가 부러진 데다 허파에 피가 고여 위독한 상태. 시급히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이틀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만 쉬고 있었다.

▼글 싣는 순서▼

- ①병 고치러 갔다 병 걸린다

처치실이 하나밖에 없어 빨리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신음만 지르고 있었고 곳곳에서 의사들이 “처치실, 빨리 비워줘”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강북의 S대병원 응급실에서는 갑자기 곡성(哭聲)이 터져나왔다. 담낭암 환자 이모씨(74)가 이날 오전 8시경 아랫배가 갑자기 부어올라 이곳을 찾았다가 15시간 만에 입원조차 해보지 못하고 숨졌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전국 대다수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 결과 응급실에서 숨진 환자의 절반 정도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많은 환자가 아예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서 거리를 헤매다 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S종합병원 관계자는 “뇌중풍 심근경색 등으로 1초를 다투는 환자가 하루 10여명씩 응급실에 도착했다가 중환자실이 다 찼다는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린다”면서 “다른 주요 병원도 사정이 마찬가지이며 상당수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을 옮기던 중 숨진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의 한 교수는 강의 때 학생들에게 “큰 사고가 나면 무조건 우리 병원으로 가자고 한 다음 의대생이라고 외쳐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증축하고 인원을 늘려 위급한 환자를 더 받을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기형적 의료시스템 탓에 시설과 인원을 보완할수록 병원은 적자만 쌓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2차 진료기관이 의료사고의 위험이 크고 수익은 없는 응급실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환자들이 3차 진료기관으로 몰리고 있어 응급실의 환자 정체가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의사들은 고된 업무에다 의료사고의 위험과 싸워야하면서도 인센티브는 없는 응급의가 되기를 외면하고 있다.

C병원 전공의 배씨의 경우에도 의료 인력 부족으로 사흘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후배 전공의가 일에 염증을 느끼고 말없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일이 더 늘어나게 됐다.

정부는 2000년 7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발효시키고 전국에 권역별응급의료센터 18개, 지역응급의료센터 108개 등을 출범시키며 응급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의료시스템의 전면적 개편 없이는 실효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아버지가 말기 췌장암에 걸려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병원 응급실에 모시고 간다는 주부 고모씨(42)는 절규한다.

“우리나라 응급실은 지상의 아수라장입니다. 전시도 아닌데 국민의 목숨이 지푸라기처럼 버려지고 있어요. 이러고도 국가인가요. 이전에는 일부 상류층이 외국 병원을 가는 것을 비난했지만 저라도 여유가 있으면 외국에 가겠습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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