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시인의 팔당호 문인 수질감시단 환경 탐방기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04분


←시인 홍신선 최정례 천양희 남진우, 문학평론가 하응백, 시인 황동규, 환경감시대장 정유순씨
←시인 홍신선 최정례 천양희 남진우, 문학평론가 하응백, 시인 황동규, 환경감시대장 정유순씨
“날씨도 좋은데 한강 유람 가자.”

천양희 시인의 유혹에 무작정 따라 나선 길이었으나 가보니 실은 한강 환경감시대장의 주도 면밀한 ‘작전’이 있었다. 한강 물에 시를 섞어 0.0001ppm이라도 물을 맑게 하겠다는 그의 작전에 따라, 황동규 홍신선(시인) 남진우 하응백(평론가) 등 문인들이 팔당호 수질감시선 ‘한강 1호’를 탔다.

햇빛 찬란한 4월19일, 양수리 한강수질검사소를 떠난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모터보트가 양수대교와 철교를 지나 용담교 아래를 쏜살같이 달려 갈 때 계기판은 수시로 한강의 깊이와 위치를 알려주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식수, 그 10m의 수심 위를 달리는 것이다.

왼쪽으로 운길산 자락에 수종사가 바라보이고, 강기슭을 베고 누운 과원에는 배꽃이 난만하다. “아 저게 앵두꽃?” “아 저건 조팝나무 꽃인데!” 저마다 아는 꽃이름을 불렀다.

오른쪽 서종면을 향한 도로의 배면에는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산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서 있었다. 도로공사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양버들이 휘늘어졌던 그 꿈의 길을 무너뜨리고 유흥 시설이 줄을 지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들 유흥 시설도 아름답게 보이지만, 결국은 상업적 목적에 의해 환경이 훼손되는 것이다. “모텔이야말로 여럿이 즐기는 장소가 아니겠느냐”는 우스개 소리가 뒤따랐다.

100년 전에는 영국 지리학회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이 강을 나룻배로 거슬러 올랐었다. 거친 급류와 야비한 주민들의 호기심과 싸우면서도, 푸른 베일 속에 가려져 이상향처럼 가물거리는 먼 풍경들과 싱싱한 꽃들에 감탄했었다. 그 때도 4월 이맘때였다.

여러 개의 댐이 생기고 한강은 많이도 변했지만 100년 전 그녀가 썼던 것처럼 이따금 청둥오리가 수면을 치고 난다. 주변의 갈대 습지와 족자섬이 그들의 ‘모텔’이라고 했다. 과수밭과 야채밭 이제 막 새순을 내뿜는 초록의 숲, 산그늘에 늦게 핀 벚꽃들, 아름다운 4월의 한가운데에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신록의 팔당은 너무 아름답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파괴의 흔적이 있다. 양수리에서 문호리로 이어진 도로 확장 공사가 그렇고 또 늘어선 러브호텔과 카페가 그렇다.

한강물을 0.1ppm 맑게 하는 데 약 1조원의 돈이 든다고 한다. 그것보다 우리들의 편리에 대한 욕구를, 경관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이기심을, 경치 좋은 곳에서 즐기겠다는 이기심을 조금만 줄인다면, 한강은 우리 아이들의 영원한 식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팔당은 아니 한강은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통이라고 생각하자. 익숙해 아침 저녁으로 잊고 건너다니는 그 강이 바로 내가, 아니 수도권 시민 2000만이 매일 먹고 마시는 생명의 물통이라 생각하자. 자신이 마실 물통에 누가 정욕을 배설하고 침을 뱉을 것인가.

시(詩)가 정신의 물통이라면, 한강은 육체의 물통이다. 우리 나그네들은 배 위에서 말없이 넋을 놓고 있었다. 한강은 참으로 길게, 넓고 깊게 우리를 안아주고 있었다.

최 정 례 시인 ch2222@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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