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점수따기 전락…허위증명서·시간 부풀리기도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01분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박모씨(37)는 최근 알고 지내던 한 인사에게서 난처한 부탁을 받았다. 중학생인 아들의 봉사활동 실적이 올해부터 내신성적에 반영되니 동사무소에서 일한 것처럼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박씨는 “규정상 해줄 수 없지만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 학생을 보내면 적당한 일을 시키고 증명서를 발급해 주겠다”고 거절한 뒤 두 사람의 관계가 서먹해져 연락도 끊겼다.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95년부터 각급 학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학생 봉사활동이 입시를 위한 ‘점수 따기’로 변질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1, 2학년, 고교 1학년까지 확대 적용되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봉사활동이 정규 교과 과정에 편입되면서 봉사활동 실적이 더욱 중요해졌다.

중학생의 경우 봉사활동 점수가 연간 15시간 이상은 8점, 10∼14시간은 7점, 10시간 미만은 6점이 고입 내신 성적에 반영된다.

고교생은 각 대학이 봉사활동 점수를 대입 전형에 반영할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봉사 실적이 정규 교과에 포함됨에 따라 입시에 반영하는 대학이나 반영 비율이 지금보다 높아지게 됐다.

이에 따라 최근 봄방학을 맞아 동사무소 등 관공서나 사회복지시설에는 봉사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부모가 아는 사람 등을 통해 관공서 등에서 허위로 실적 증명서를 받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2시간만 봉사활동을 하고도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한 것처럼 실적을 부풀려 증명서를 받아 오는 경우도 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주부 김모씨는 “아들이 새벽부터 인근 동사무소에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2시간짜리 실적 증명서를 받아 왔다”며 “아버지가 공무원인 아들 친구는 봉사활동을 하지도 않고 10시간짜리 증명서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많은 학생들은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고교 1학년 오모양(16)은 “겨울방학 때 집 근처 동사무소에 3번이나 찾아가 봉사활동을 신청했지만 매번 ‘할 일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말만 듣고 허탕을 쳤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봉사할 기관을 찾아가도 청소나 서류 정리 등 허드렛일만 시키고 공무원들도 업무에 방해만 된다며 귀찮아한다는 것.

서울시교육청과 각 지역교육청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 봉사활동 정보안내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비교적 손쉬운 일만 찾고 정작 봉사활동이 필요한 장애인 시설이나 노인복지 시설 등은 기피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려는 곳은 대부분 동사무소나 파출소, 우체국 등이어서 봉사 희망자와 기관을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사회복지시설에도 지원자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