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외국인' 병역 기피의 실태와 문제점

  • 입력 2002년 2월 5일 17시 49분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합법적 병역 기피자’들은 국내에서 대체로 남부러울 것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가수 유승준씨와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적을 포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거나 또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자칭 타칭 ‘성공한 한국인’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현실. 특히 이들은 최근 외국계 기업들이 속속 한국에 진출하면서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거액의 몸값을 받기도 하고 또래의 한국인들이 접해볼 수 없는 각종 혜택도 누리고 있다.》

고교 1학년이던 1991년 가족을 따라 캐나다 벤쿠버로 이민갔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찾아 지난해 여름 귀국한 캐나다 시민권자 J씨(29). 그는 “취업을 위해 한국에 온 이후 인생이 한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캐나다에서는 그저 평범한 동양계 이민자에 지나지 않던 J씨였지만 조국은 국적을 바꿔 다시 찾아온 그를 실력과 조건을 갖춘 매력적인 ‘한국인’으로 여겨줬기 때문. 처음에는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이 따갑기도 했지만 점차 자신이 ‘선택된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가 ‘합법적 병역 기피자’가 된 것은 캐나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캐나다 육사 지원자에게는 일반인보다 시민권을 빨리 내주기 때문에 그는 육사 지원 후 3개월만에 시민권을 받고 병역 의무에서 해방됐다. 물론 캐나다 육사에는 지원만 하고 입학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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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일본계 전자회사에 입사한 그는 현재 경기 성남시 분당에 30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주말에는 워커힐호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즐기거나 골프를 치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불편한 점이라면 2년에 한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는 것 뿐.

J씨는 “재외동포법을 만들어 동포들이 한국에서 쉽게 취직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는 이제와서 군대 운운하며 입국을 막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찾아 99년 귀국한 미국 시민권자 M씨(31)는 “돈을 모으기에는 한국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세금과 팁 등으로 나가는 돈이 많지만 팁도 없이 단돈 2500원에 자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는 것.

3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귀국할 때는 2년간 한국에서 일하며 한국말을 배우고 돈을 모아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생활에 흠뻑 빠져 벌써 4년 째 서울의 한 은행에 다니고 있다.

그는 “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민권을 획득했고 국적 선택은 내 자유”라면서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와 같은 경우가 되면 100% 미국 국적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김선미기자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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