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채업자 70%이상 폐업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20분


사채업자 신모씨(46)는 올 들어 업종을 ‘신용금고 대출 알선’으로 바꿨다. 신용금고와 계약하고 대출 희망자를 알선해주는 대신 100만원 대출에 3만5000원, 200만원 대출에 5만5000원, 300만원 대출에 6만50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70% 이상의 사채업자가 문을 닫았고 기업어음할인 분야는 90% 이상이 전멸했다고 보면 된다”며 “정부의 자금 추적으로 전주(錢主)들이 움직이지 않는 데다 경찰의 단속으로 돈 받기가 힘들어지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사채업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영업 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채시장 처리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악덕 고리 사채업자에 대한 전방위 ‘압박 작전’으로 이들을 제압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사채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돼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돈 빌릴 곳이 없어진 30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들은 내년 2월 이자를 제한하는 금융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 더욱 음성화된 사채시장에서 ‘위험 프리미엄’까지 붙은 고리를 물어야할 형편이다.

사채시장의 위기는 정부의 단속에도 원인이 있지만 일본계 대금업체의 한국 사채시장 진출과 신용금고를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의 사채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위기의 토종 사채업자〓신용불량자의 급증으로 국내 사채시장 규모가 20조원(금융감독원 추정)으로 커지자 일본의 대형 대금업체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국내에서 영업중인 일본계 대금업체는 A&O인터내셔널, 프로그레스, 캐시웰자산관리, 센추리서울, 청담파이낸스 등.

이들은 일본의 영업 노하우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용 상태가 괜찮은 개인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특히 국내 사채업자들보다 싼 이자(연리 12∼20%)로 자금을 끌어와 굴리면서 연이율 90∼110% 정도에 장사한다.

A&O크레디트 박진욱(朴鎭旭) 사장은 “일본의 사채 제한금리가 지난해 6월 29.6%까지 낮아져 수익성을 맞출 수 없었다”며 “한국 사채시장은 연리가 200∼300%나 되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보고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세후 150억원의 이익을 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의 순익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용금고들도 앞다퉈 연리 60%대의 상품을 내놓는 등 사채 고객 끌어오기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121개 신용금고의 신용 대출 규모(10월말 현재)는 6조980억원으로 6월말(5조906억원)보다 1조원 가량 늘었다. 특히 500만원 이하의 소액 신용대출 규모는 6월말 8136억원에서 10월말 1조1536억원으로 41.8%나 증가했다.

▽시행령으로 넘어간 제한 이자율 결정〓사채시장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 금융이용자보호법이 6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사채 제한 이율을 지나치게 낮추면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30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에 한해 최고 이자율을 60% 이하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야당은 60%를 기준 금리로 하되 ±30%의 차등폭을 두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제한 이율을 높이면 사채 폭리를 합법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리 40% 범위에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쟁점인 제한 이자율은 법이 아닌 시행령에서 정하기로 일단 결론이 나 다소 융통성을 갖게 됐다.

제한 이자율에 대해 사채업자들은 “전주에게서 자금을 조달할 때의 금리가 월 2∼3%에 이르고 광고비와 마진까지 계산하면 월 10%는 받아야 수지가 맞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이 사채업자 5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국세청에 등록된 사금융업체의 금리는 평균 연 102%(월 8.5%)였으며 미등록업체는 평균 연 298%(월 24.8%)로 나타났다.

▽해결책〓전문가들은 사채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서민을 위한 소액대출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들이 엄청난 이자를 물면서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소액대출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LG경제연구원 이우성(李愚成) 선임연구원은 “제도금융기관이 체계화된 신용평가시스템과 풍부한 자금 확보로 소액대출시장에 진출하면 사채시장의 폐해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보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금융 금리 수준
구분일본계 대금업자 국내 대금업자신용금고(제도금융)
대형소형
6월월 6.9∼7.2
(연 82.8∼86.4)
월 4.5∼9.7
(연 54∼116.4)
월 18
(연 215)
월 2.3∼5.0
(연 27.6∼60.0)
11월월 8.1∼10.8월 4.5∼9.7
(연 54∼116.4)
월 13
(연 159)
상동

<이훈민동용기자>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