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치권로비 수사방침 "조사 안한다고는 말못해"

  • 입력 2001년 11월 23일 06시 19분


검찰이 MCI코리아 소유주 진승현(陳承鉉)씨의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오자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서울지검 고위 관계자는 22일 “딱 잘라서 수사를 안한다고는 말 못한다”고 말했다.

진씨가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보였던 “수사의 핵심대상이 아니다”라는 반응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말이다.

또 발언시점도 엄익준(嚴翼駿)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개입의혹이나 여야의원 10여명의 이름이 담겼다는 ‘진승현 리스트’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이어서 검찰의 수사 착수 가능성은 한층 커진 것으로 검찰 주변에선 보고 있다.

물론 이 관계자는 “현재는 로비자금 12억5000만원의 향방을 쫓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라고 거듭 밝혔지만 ‘수사하고 싶지만 먼저 치고 나갈 수 없으니 여론을 모아달라’는 주문처럼 비쳐졌다.

검찰의 태도 변화 조짐은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의원이 진씨의 로비 가능성을 일부 확인하면서 악화된 여론과도 무관치 않다.

김 의원 측근은 “진씨가 국가정보원 경제과장인 정성홍(丁聖弘)씨와 지난해 총선 때 목포지구당 사무실까지 내려왔지만,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 검사장은 김 의원의 해명이 알려진 직후 “검찰이 살려면 방법은 하나”라고 말했다. 검찰 수뇌부가 ‘모종의 결단’을 앞두고 장고(長考)에 들어갔음을 시사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면 만신창이가 된 검찰 조직을 위해 ‘마지막 칼’을 뽑는 것을 뜻한다. 정치권 로비가 속성상 여권에 많이 몰릴 수밖에 없어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수사의 주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수사 착수 결정은 수사의 성공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수사계획이 없다’고 연막을 치면서 내사자료를 수집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수사결과를 내놓을 자신이 생길 때가 수사 착수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돈을 받은 사람의 ‘돈 관리’가 치밀해져 물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진 것도 검찰에는 부담이다.

또 진씨가 입을 열지 않거나, 로비자금이 현금으로만 건네졌다면 자금흐름을 밝히기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수사성공 가능성을 놓고 검찰은 고민중이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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