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국정원]검찰 왜 권력앞에선 작아지나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30분


곤혹
‘검찰은 왜 국가정보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검찰이 지난해 11월 당시 국정원 김은성(金銀星) 2차장과 김형윤(金亨允) 경제단장의 금품수수 진술을 확보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왜 유독 국정원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국정원은 옛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수십년 동안 검찰과 경찰 수사의 성역으로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이례적인 국정원 간부 수사〓검찰은 지난해 11월 ‘정현준(鄭炫埈) 게이트’ 수사 당시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李京子)씨에게서 김 차장과 김 단장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았으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검사는 “사표를 내겠다”면서 수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검찰 지휘부는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수사검사에 대한 인사조치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일부 직원이 수사검사의 뒷조사를 하고 이에 대해 검사들이 대책을 의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9월18일 동아일보가 김 전 단장의 금품수수 사실을 보도하자 뒤늦게 수사에 착수, 김 전 단장을 10월5일 소환한 뒤 다음 날 곧바로 구속하고 다시 5일 만에 기소하는 등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15일 경질된 김 전 차장 수사도 9월20일 시작해 10월 초 소환한 뒤 내사종결했다.

▽검찰이 위축되는 이유〓일선 검사들이나 전직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 핵심 간부들이 권력 핵심과 직접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 안기부 파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검찰에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도 있고 언론의 견제도 심하지만 국정원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국정원의 일부 간부나 국정원이 하는 일 가운데 일부는 ‘정권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이나 김 전 단장도 정권 핵심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단장은 국정원 내에서 ‘범목포파’의 실세로 통했으며 김 전 차장도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다.

▽‘성역(聖域)’ 사례〓문민정부 초기인 93년 10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는 92년 대통령선거 때 쓰고 남은 돈 50억원을 실명자금으로 전환하기 위해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에 개설한 ‘세기문화사’ 명의의 안기부 계좌에 넣었다. 이 계좌는 97년 현철씨 비리사건 수사 때 대검 중수부 수사팀에 의해 처음으로 존재가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 이전까지 안기부 계좌는 ‘TNT’(폭탄)로 불렸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수사라고 해도 돈의 흐름이 안기부 계좌로 연결되면 계좌추적을 포기하고 덮어버렸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에도 안기부에 대한 수사나 안기부 계좌 추적이 이뤄진 적이 있으나 과거 정권의 비리에 관한 것이었으며 ‘당대 정권’이 ‘당대 정보기관’을 수사한 적은 거의 없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