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증거조작 판단…문제점-남는 의문]증언 자의적 해석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2분


법원이 ‘북풍 사건’의 증거 문서가 조작됐다고 판단했지만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정치권이 이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치공방의 도구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회합은 재미교포 김모씨를 통한 상당한 사전 준비 끝에 이뤄졌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 의원이 97년 대선(12월18일)이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11월20일)에서 북측 인사를 ‘상당한 사전 준비 끝에’ 왜 만났는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사건의 실체가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측은 11일 “아들을 만나러 간 중국 베이징(北京)호텔에 북측 인사가 전화를 걸어와 우연히 만난 것은 사실이나 선거 얘기 등 이른바 ‘북풍’을 모의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회합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근거로 정 의원이 97년 11월13일 당시 신한국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됐으며 1주일 뒤 북측 인사를 만난 사실 등을 들고 있다.

검찰측 증인의 증언 시점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씨가 증언한 시점은 증인으로 채택된 뒤 10개월이 지난 9월21일. 당시는 여야가 재·보선을 의식해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싸고 대립하던 미묘한 시점이어서 정치권에서는 ‘북풍 사건으로 한나라당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편 민주당이 김씨의 증언을 근거로 “이 총재가 북측과 밀약을 맺었다”고 비난한 것은 당시 공판의 주요 쟁점이 위임장에 있는 이 총재 서명의 진위 여부였던 만큼 무리한 정치공세였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정 의원 본인이 신한국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다는 신문 기사 복사본(위임장)을 북측에 넘기는 것을 봤지만 서명은 보지 못했고 북측이 넘겨준 복사본에 서명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서명이 북측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검찰도 “이 총재의 서명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 증언을 이 총재의 북풍 관련 공격의 소재로 삼기에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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