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外交’ 뒷북 대책…정신 못차린 외교부

  • 입력 2001년 11월 5일 22시 40분


중국에서 처형된 한국인 신모씨(41) 사건을 둘러싸고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통상부가 아직 뚜렷한 대책조차 마련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사업무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재 검토중인 개선책들이 하나같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미봉책이어서 외교부가 아직도 이번 파문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승수(韓昇洙) 장관의 특별지시로 실무진이 검토중인 영사업무 개선책은 △재외국민 보호업무 통합지침 마련 △영사업무의 감독기능과 전문성 강화 △공관장 지휘체제와 본부 보고체제 개선 △영사업무 인력보강 △국내외 협조체제 강화 등이 골자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의 영사업무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왔는지는 물론 개선책 역시 즉흥적인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영사업무 통합지침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은 그동안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처리 지침이 사실상 전무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재외공관 가운데는 아예 영사업무 처리지침이 전혀 없는 공관이 허다한 데다 일부 공관에서 운영중인 업무지침도 제각각인 것이 실상. 여기에다 그나마 업무지침이 있는 곳도 현지에서 빈발하는 사건에만 한정된 극히 단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사업무 관련 사건 사고를 한 명의 전담영사가 처음 접수 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전담책임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은 현재의 부족한 인력구조와 순환보직 체제가 유지되는 한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영사직 외무관에 대해 다음 인사 때 희망보직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거나 민원수당 및 성과급을 신설하는 등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안 역시 그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해온 영사업무 종사자들을 위로하는 내용일지는 모르지만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영사업무에 대한 감독관 기능을 대사관측에 부여하거나 공관 지휘 및 보고체계를 강화한다는 내용 등은 각종 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

이 때문에 외교부 안팎에선 본격적인 개선책이 마련되기도 전에 “결국 일회성 면피책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적지 않다. 개선책을 마련중인 영사국 관계자들조차 “시급한 인력보충 문제만 해도 당장 본부 영사과 인력을 현재의 3명에서 6명으로 늘려야 할 형편인데 위에서는 한명만 보충해줄 수 있다고 한다”며 푸념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허울만 그럴듯한 개선책을 내놓기보다는 영사업무에 대한 근본적인 현실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한 관계자는 “영사업무가 과중하다지만 외교부는 과연 영사들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는지, 교민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며 “이런 현실인식 없이 무슨 대책이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사건 이후 영사업무 개선책을 주무부서인 영사국에만 떠맡겨 놓은 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외교부 내 분위기도 근본적인 쇄신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

한 정부 관계자는 “급조된 개선책을 내놓기보다는 차라리 솔직히 현실을 반성하는 보고서를 낸 뒤 시간을 두고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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