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본 시민의식 "남몰래 버린 쓰레기많아요"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52분


“와! 놀랍군. 우편물 쓰레기에 주소와 이름을 싹 지워버렸네. 쓰레기 봉투에 넣지 않고 버리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나 보지.”

“이 까만 봉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던졌나봐. 봉투가 찢어져 음식물 찌꺼기에 벌레가 모여들기 시작했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충무로 뒷골목.

서울 중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4명이 땀을 훔치며 남몰래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뒤져 ‘범인 색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시민의식이 성숙하려면 멀었어요. 공무원들의 현장 단속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김웅기·28·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 4년)

이들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혜은씨(23·단국대 스포츠과학부 4년)는 “명동처럼 번화한 거리에는 분리 수거가 가능한 쓰레기통을 많이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레기 무단 투기 못지 않게 이들의 진을 뺀 것은 불법 주정차 단속이었다.

단속에 나선 기명희씨(20·서울여대 정보영상학부 1년)는 “평생 들어 보지도 못한 욕이란 욕은 다 들어봤다”고 ‘황당한’소감을 밝혔다.

기씨와 함께 주정차 단속에 나선 조지상씨(21·동국대 정보통신학과 2년)는 “청계천은 도로에 비해 이용 차량이 많아 불법 주정차가 사라지기 힘들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묘안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선 구청의 더딘 민원 처리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조씨는 “이곳 저곳 담당 부서를 전전하다 보면 서류 한 장 떼는데 1주일 이상 걸릴 수 있다”며 “온라인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구청을 찾는 대다수 주민들이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일당 2만원에 6월30일부터 일하면서 겪은 ‘체험의 현장’은 반드시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김웅기씨는 홀로 사는 노인들을 잠시 봉사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중구 신당동 ‘떡촌’에 사는 85세의 할머니가 고아를 데려다 정성껏 기르는 모습은 ‘아직 이 사회에 희망은 남아 있다’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또 기씨는 “골목길 입구에 세울 이정표를 직접 만들면서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주인의식이 자연스럽게 솟아났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일하면서 색다른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한달 이상 청춘 남녀들이 어울려 지내면서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또 대학생들이 같은 지역 주민이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초중고교 동창생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스스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모범 시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는 기회가 됐습니다.”

뜨거운 불볕 더위 속에서도 체험의 현장에 빠져든 ‘아르바이트 4인방’의 얼굴은 싱그러웠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