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구권 사기극 왜 끝없이 계속되나

  • 입력 2001년 3월 21일 18시 38분


《청와대 등의 고위층을 사칭한 구권(舊券)화폐 사기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지검 강력부(김병선·金炳銑부장검사)는 21일 구권화폐 사기극을 벌인 3개 조직 일당 13명을 적발, 이 가운데 8명을 구속하고 5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구권화폐 대규모 사기사건이 적발된 것은 지난해 5월 사채업자 장영자씨(56·여)의 사기사건 이후 이번이 세 번째. 검찰은 현재 전국적으로 10여개의 대형 구권화폐 사기단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의 뒤를 쫓고 있다.》

▽청와대 등 사칭 사기 사례〓부산지검 강력부는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인 구권화폐의 실명화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면 거액의 사례비를 주겠다고 속여 박모씨(54)로부터 1억1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심모씨(47·광주 서구 화정동)와 전모씨(40·서울 은평구 역촌동) 등 일당 3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옛 정권 실세들이 비자금으로 보관중인 구권화폐 60억원을 42억원에 싸게 처분하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려다 미수에 그친 김모(59·부산 해운대구 우동) 이모씨(42) 등 2개 사기단 일당 5명을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장모씨(43·인천 계양구 효성동)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심씨 등은 1월 서울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재력가인 박씨에게 접근,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보관중인 수십조원대 1만원짜리 구권화폐를 실명화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파견된 공무원인데 실명화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면 요구하는 대로 사례비를 주겠다”고 속여 1억1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또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부산 동구 범일동 모다방에서 만난 안모씨(49·사업) 등을 상대로 과거 실세들이 보관중인 구권화폐 60억원을 70%에 해당하는 42억원에 싸게 처분하겠다고 속여 돈을 받아 가로채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에 앞서 창원지검은 지난달 19일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다 미수에 그친 사기범 일당 4명을 구속기소했으며 서울지검도 1월25일 구권화폐 사기단 7명을 검거했다.

충남경찰청도 최근 대전지역에서 구권화폐 사기 사건이 잇따르자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사채업자인 김모씨의 은행계좌를 추적중이다.

▽구권화폐 사기극 끊이지 않는 이유〓청와대 등 고위층만 들먹이면 어떤 말이든 먹혀드는 사회풍조에다 옛 정권 실세들이 구권화폐를 바꾸려 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정치권에서 각종 ‘비자금’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어 일반인들이 옛 실세들의 통치자금이나 비자금의 존재를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도 한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기범들은 “문민정부가 ‘환란(換亂)’ 등 경제위기때 활용하기 위해 조폐창에서 초과발행한 수조원대의 비자금이 창고 등에 보관돼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구권”이라는 그럴 듯한 설명과 함께 정밀하게 위조한 서류 등을 내보이며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사기단들도 청와대나 국가정보원 직원을 사칭하고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수백억원이 입금된 예금통장, 국가가 신분을 보장한다는 위조신변보호확약서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구권화폐란▼

서울 명동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구권화폐’라는 용어는 흔히 옛 군사정권이나 문민정부 시절 비자금으로 조성됐다는 천문학적 규모의 1만원짜리 지폐를 일컫는 것으로 성격에 따라 크게 ‘구권(舊券)’과 ‘구권(求券)’으로 나뉜다.

구권(舊券)은 위조방지를 위한 은색 실선이 첨가되기 전인 94년 이전에 나온 지폐로 보통 구권화폐라고 하면 이것을 가리키며, 구권(求券)은 집권세력이 나라경제가 위태롭거나 긴급하게 필요할 때를 대비해 만들었다는 지폐로 발행시기와는 무관하다.

검찰은 “수사 결과 옛 정권 실세가 보관중이라는 수십조원 규모의 구권의 실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소문에 불과하다”며 근거없는 소문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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