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보재정 지출 절감 또 땜질식처방 우려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29분


주부 이영효씨는 일곱 살배기 아들이 독감에 걸려 낮 12시경 동네의원을 찾는다. 의사는 “오늘 저희가 받을 수 있는 환자 수가 정부의 기준(50명)을 넘었기 때문에 진료가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인근 의원을 찾아가지만 마찬가지다. 이씨는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 아이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씨는 “환자가 많다고 의원에서 진료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평한다.

현재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의료보험 재정 절감 대책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이씨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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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은 의료보험료를 올리고 국고를 추가 투입하며 의보재정의 지출 요인을 줄인다는 원칙 아래 의보재정 대책을 논의 중이다. 당정은 21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마련한 이 같은 의보재정 절감 대책을 본격 논의키로 했다.

당정은 올 초 의보료를 올리고도 ‘의약분업 강행→정책 실패→의보재정 파탄’이라는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반발을 우려해 의보료 인상폭을 당초 20∼30%에서 10∼15%로 낮출 가능성이 높다.

대신 의보재정의 지출 요인을 최대한 줄여 2조∼2조5000억원을 절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대책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고 의료계와 약계의 반발에 부닥치며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 것으로 보여 당정이 여론을 의식한 ‘미봉책’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처방 및 조제가 하루에 일정한 기준을 넘는 의료기관과 약국에 대해서는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일정액을 깎는다는 ‘차등수가제’가 대표적.

서비스가 좋은 의료기관에 환자가 몰리는 건 경쟁 유도 차원에서 바람직한데 그렇지 못한 의원과 같은 수의 환자만 진료토록 하는 게 타당한지, 환자 수를 어떤 기준으로 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없이 이 같은 방안을 시행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반 주사제를 분업에서 완전히 제외하고 처방료와 조제료를 없애 연간 3040억원의 재정을 절감한다는 계획도 의약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약사법을 다음달 중 개정하더라도 주사제 관련 부분은 유예기간이 지난 뒤 시행하므로 실제 올해 예상 절감액은 2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주부 이씨는 “정부가 의료보험에 대해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대책을 내놓으면 국민도 적정 수준의 의보료 인상을 감수하겠지만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면 절대로 두 번 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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