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약품으로 자판기 소독…당국은 나몰라라

  • 입력 2001년 1월 29일 09시 35분


전국적으로 4만여대의 커피자동판매기 소독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식품자동판매기업중앙회(이하 자판기협회)가 인체에 해로운 살충제를 소독약품으로 사용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자판기협회가 사용한 살충제에 대해 제조업체인 K제약은 소량만 흡입·섭취해도 인체에 치명적인 약품이라고 밝히고 있어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29일 자판기협회측에 따르면 이 협회의 12개 지회는 전국 커피자판기의 약 10%에 해당하는 4만여대의 자판기를 월 1회 소독하면서 K제약이 생산한 살충제 슈퍼밴과 살균제 깨끄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협회는 자판기 주변과 외부 소독에는 슈퍼밴을, 자판기 내부 소독에는 깨끄탄을 사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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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소독약품의 유해성

지난 99년 자동판매기 및 식품 등의 위생수준 향상을 통해 국민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취지로 설립된 자판기협회는 전국에 12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소독을 담당하는 별도 직원을 채용, 월4000원의 회비를 자판기업주로부터 받아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깨끄탄의 성분인 알킬 페놀 등과 슈퍼밴의 성분인 델타메스린 등의 유해성과 관련, "슈퍼밴은 자판기 등에 사용할 경우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살충제"라고 말했다.

또다른 식약청 관계자는 "깨끄탄도 현재 환경호르몬으로 추정되는 알킬 페놀류가 함유돼 주의가 요망된다"고 말했다.

이 약품을 생산한 K제약은 자체제작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서 "슈퍼밴과 깨끄탄을 흡입할 경우 호흡계통 자극 및 메스꺼움, 두통, 현기증을 일으키고 섭취하게 되면 구토, 설사등 위장장애와 화학적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K제약 관계자는 "슈퍼밴은 해충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오염된 웅덩이 같은 지역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며 "소량만 흡입·섭취해도 인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자판기 등에 사용할 경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제품을 승인한 환경부 산하 금강환경관리청 관계자는 "슈퍼밴에 포함된 델타메스린은 삼림, 곡물저장소, 공중보건 등에 쓰이는 유독물질이나 자판기 등에 사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자판기협회는 인체에 해로운 살충제로 자판기를 소독하면서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소독작업을 하는 직원들에게 약품의 성분, 소독요령 등의 기본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협회 제주지부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0일까지 일했던 Y씨(35)는 "성분과 효력을 알 수 없는 약을 아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판기에 사용해 왔다"면서 "자판기 내외부를 소독하면서 약품에 노출돼 심한 두통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판기협회 김병호 사무국장은 "현재 자판기 소독에 사용하고 있는 K제약의 깨끄탄과 슈퍼밴은 희석만 잘 시키면 인체에 무해하다"면서 "300배 정도 희석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제약 관계자는 "슈퍼밴은 1000배 희석시켜도 인체에 여전히 유해하다"면서 "희석 배율을 정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제조업체에서 조차 희석배율을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철저하게 안전교육을 받은 방역요원이 취급해야지 일반인이 다루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동아닷컴에 슈퍼밴의 유해성과 희석배율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뒤 "1000배로 희석시켜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해충을 제거할 수 있는 최대의 희석 배율을 말한 것"이라면서 "소독약병에 250배 정도로 희석하도록 표시돼 있다"며 자신의 당초 견해를 수정했다.

한편 자판기협회 김국장은 직원들을 교육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직 시작 단계라 그렇다. (Y씨가 일하는) 제주도까지는 신경쓰지 못했으나 앞으로는 전지회에 걸쳐 교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판기협회를 감독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업주들이 회원이 돼 자판기를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현행 방안이 바람직하다"며 "앞으로 자율지침을 만들어 자판기협회가 자판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녹색소비자연대의 원청수 실장은 "보건복지부는 협회를 승인할 때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인체에 무해한 소독제라도 희석배율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약품을 교육도 안 된 직원에게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원실장은 "이 협회에 소독을 맡기느니 차라리 업주들을 교육시켜 스스로 소독할 수 있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책을 제시했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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