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미디어 렙, "시장논리만 좇다 방송 공익 훼손"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56분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추가 설립 허용문제를 둘러싸고 문화관광부와 MBC가 갈등을 빚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방송광고시장을 완전경쟁 체제로 전환하라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9일 재심을 요청하자 MBC가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이날 “규제개혁위 요구안은 사실상 방송사의 광고 직접 영업을 허용해 방송의 공익성이 무시되고 과도한 시청률 경쟁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제한 경쟁이 바람직하다”며 재심을 요구했다. 규제개혁위도 미디어렙 법안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

문화부는 방송광고 영업의 완전경쟁체제가 도입되면 △방송의 공익성 훼손 △광고료 급상승 △시청률 경쟁에 따른 프로그램의 저질화 △변칙 광고 범람 등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방송은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이 자사의 이익 증대를 위해 광고와 연계된 프로그램 제작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광고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면 문화 프로 등 고급 프로그램들이 사라져 시청자 주권이 침해되고 방송의 공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화부는 공영방송인 MBC가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한 안정적 광고확보로 상당한 특혜를 누려오고도 이에 대한 반성 없이 직접 방송광고 영업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MBC는 99년 본사에서만 5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


또 현재 공영미디어렙인 방송광고공사가 방송 광고 영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광고비 인상이 억제되고 있으나 자유경쟁과 시장논리가 도입될 경우 광고료가 크게 오를 것으로 문화부는 보고 있다. 광고료가 오르면 기업들은 제품값에 광고비를 떠넘기게 돼 결국은 시청자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만약 광고료가 50%만 오른다고 해도 KBS MBC SBS 등 TV 3사의 매출액이 1조원 이상 증가한다. 방송위원회가 집계한 1999년 광고시장 점유율(MBC 37.4%·지방사 포함)을 기준으로 하면 MBC의 증가분만도 4000여억원에 달한다.

문화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방송내용의 저질화다. 요즘에도 시청률 경쟁으로 선정적인 저질 프로들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시청률과 광고비가 직결되는 상황이 되면 프로그램 저질화는 더욱 가속화한다는 것.

또 방송 내용에 대한 광고주의 압력이 증가하고 출연자를 통한 간접광고도 교묘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MBC는 9일 밤 9시 ‘뉴스데스크’에서 “문화부가 기존 독점체제를 골자로 한 법률안을 규제개혁위에 넘긴 뒤 거부당하자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로 문화부를 비난했다.

MBC측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위 등이 모두 경쟁체제 도입에 찬성하는데 유독 문화부만 반대하고 있어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는 또 문화부가 경쟁체제 도입의 부작용으로 들고 있는 프로그램 저질화 우려는 아직까지 정확한 근거가 없는 예단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방송위원회에서 방송내용에 대해 심의하고 있기 때문에 저질 선정프로 문제는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광고료를 시장논리에 맡기면 광고료가 오히려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

MBC는 이와 함께 재정적으로 안정되면 좋은 프로그램 제작 등을 통해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반응은 MBC의 주장과는 다르다.

한 방송학자는 “MBC는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고 1998년 구조조정 때 2억∼3억원의 퇴직금 대상자가 상당수일 만큼 직원들은 고액을 받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광고 직접영업을 통해 돈을 더 벌겠다는 것은 공영방송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자는 “MBC는 광고 영업 체제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자사의 경영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프로그램의 공영성을 다진 뒤 시청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10일 성명을 통해 “일부 방송사가 자사에 유리한 보도를 하더라도 문화부는 원칙을 지켜 시청자 주권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엽기자>heo@donga.com

▼'미디어 렙' 이란▼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은 방송광고 판매 대행 회사로 방송사를 대신해 방송광고 영업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를 말한다. 방송사가 직접 광고 영업을 할 경우 광고 요금이 급등하거나 광고주의 프로그램 간섭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두는 제도. 국내에는 현재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 영업중이다. 81년 신설된 한국방송광고공사는 KBS와 언론 통폐합 과정을 거쳐 민영에서 공영방송이 된 MBC, 그리고 90년 등장한 상업방송 SBS의 광고를 대행해 왔다.

공영방송제도를 택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미디어렙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며 방송사의 직접 영업은 금지되어 있다. 상업방송 체제인 미국은 방송사의 직접 광고 영업이 가능하다. 한편 현행 방송법은 국내 방송사의 직접 광고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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