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할아버지-할머니 '20세기를 보내며'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3분


《열강(列强)들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대한제국 시절, 1901년에 태어나 일제의 강점과 해방, 6·25전쟁 기아와 독재 민주화 과정까지 현대사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살아온 ‘20세기의 산 증인’. 새해 만 100세가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에 비친 지난 한 세기는 어떠했고 새해 소망은 뭘까. 이들은 오래 살려면 편안하고 착한 마음, 부지런한 생활을 하라고 권한다. 》

▼하동 강봉구할아버지-"그저 거짓없이 살아야지…"▼

“술 담배는 작년에 끊었다 아이가. 건강에 안좋다 캐서….”

경남 하동군 하동포구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화개장터 쪽으로 가다 쌍계사 주변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뒤에는 지리산 신선봉이 보이고 섬진강 모래톱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 좋고 공기 맑은 곳, 화개면 부춘리 검두마을.

길고 흰 수염을 날리는 강봉구(姜鳳九)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할아버지의 몸놀림이 가볍고 앉은 자세도 꼿꼿해 100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1901년 음력 6월29일생.

서당이나 학교문턱은 가보지도 못했고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왔다. 남의 집 머슴살이도 3년이나 했고 담배 벼 감자농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9남매(4남 5녀)를 별탈 없이 길러 현재 손자 증손자가 수십명. 부인은 94년에 먼저 떠나보냈다.

대를 이어 토종벌을 키우며 강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큰아들 창우(昌宇·64)씨와 며느리 문분남(文粉南·62)씨는 “평생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고 한겨울인 요즘도 찬물로만 세수를 하신다”며 그의 노익장을 자랑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동네 개울에서 얼음을 깨고 냉수욕을 했단다. 문씨는 “아버님이 새 어머님을 맞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적당한 배필을 못 구했다”며 웃었다.

창우씨는 “비록 아버님이 글은 짧지만 마을일에 앞장서며 평생을 착한 마음으로 살아오셨다”며 “아버님의 가르침 덕분에 우리 형제들도 우애가 남다르다”고 소개했다. 강할아버지 역시 자신을 돌봐주는 아들부부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르다.

“아들과 며느리가 잘 해주었으니 이렇게 장수했지. 마음이 편해야 살이 찌는 법 아닌가. 내가 너무 오래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

강할아버지는 지금도 집 마당과 골목을 직접 청소한다. 빨래와 설거지를 거들기도 한다.

“경로당에 가끔 나가지. 그런데 내 친구들은 30여년 전에 다 갔어. 날 보고 장수해서 좋겠다지만 경로당에 가면 아들 뻘뿐이야. 허허.”

강할아버지는 빠르게 변해 가는 세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옛날에는 호롱불 아래서도 새끼 꼬고 짚신을 삼으며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은 좋은 불(전기시설)을 두고도 일은 안하고 놀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 양봉하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벌들이 죽어.”

<하동〓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북제주 임경옥할머니- "서로 다투지않는 세상되길"▼

“도투멍 살지 말아시민 햄서(다투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월정리에 사는 임경옥(任庚玉)할머니는 TV속에 비친 ‘치고 받는 세상’에 짜증난 듯 새해 소망부터 꺼냈다.

지난 한 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눈마저 침침하지만 총기(聰氣)만은 젊은이 못지않다. TV시청은 임할머니의 하루 일과 중 중요한 소일거리.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아 스스로 답답해 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증손들의 재롱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다.

“촌에 박혀 사는 노인네가 나랏일에 대해 뭘 알겠어. 그저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 그만이지.”

그의 유일한 소망은 후손들이 걱정없이 편안히 사는 세상이 오는 것.

장수비결은 뭘까. “보약은 무슨 보약,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충분하지. 또 부지런한 생활이 건강에는 최고야.” 그는 주위의 도움 없이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고 손수 밥을 차려 들 수 있을 정도.

지난 한 세기를 회상하면서는 한동안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살 만한 세상이야. 밥과 빨래 밭일까지 기계가 다 해주고 차를 타면 금방 가고 싶은 데 가고….”

1901년 지금 살고 있는 월정리에서 태어난 임할머니는 19세에 결혼해 딸 여섯을 낳은 뒤 43세에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딸만 줄줄이 낳았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일에 매달렸으며 해녀작업 밭일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남편(1957년 사망)이 벌인 포목상이 망해 재산을 날리기도 했으나 그의 억척스러운 성격은 밭 5000평을 일구는 자산이 됐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는 마을회관에 끌려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됐을 때는 마을 안길 정리 등에 동원되기도 했고 환갑을 훨씬 넘겨서야 전깃불을 처음 봤다. 역대 선거 때마다 투표에도 빠지지 않았다.

둘째와 셋째딸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현재 할머니의 후손은 외손자와 증손 등을 합쳐 모두 93명. 외아들 박희봉(朴熙峰·57)씨는 어머니에 대해 “법에 어긋나거나 도(道)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착실하게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기자>jy788@donga.com

▼북제주 임경옥할머니▼

“도투멍 살지 말아시민 햄서(다투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월정리에 사는 임경옥(任庚玉)할머니는 TV속에 비친 ‘치고 받는 세상’에 짜증난 듯 새해 소망부터 꺼냈다.

지난 한 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눈마저 침침하지만 총기(聰氣)만은 젊은이 못지않다. TV시청은 임할머니의 하루 일과 중 중요한 소일거리.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아 스스로 답답해 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증손들의 재롱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다.

“촌에 박혀 사는 노인네가 나랏일에 대해 뭘 알겠어. 그저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 그만이지.”

그의 유일한 소망은 후손들이 걱정없이 편안히 사는 세상이 오는 것.

장수비결은 뭘까. “보약은 무슨 보약,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충분하지. 또 부지런한 생활이 건강에는 최고야.” 그는 주위의 도움 없이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고 손수 밥을 차려 들 수 있을 정도.

지난 한 세기를 회상하면서는 한동안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살 만한 세상이야. 밥과 빨래 밭일까지 기계가 다 해주고 차를 타면 금방 가고 싶은 데 가고….”

1901년 지금 살고 있는 월정리에서 태어난 임할머니는 19세에 결혼해 딸 여섯을 낳은 뒤 43세에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딸만 줄줄이 낳았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일에 매달렸으며 해녀작업 밭일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남편(1957년 사망)이 벌인 포목상이 망해 재산을 날리기도 했으나 그의 억척스러운 성격은 밭 5000평을 일구는 자산이 됐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는 마을회관에 끌려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됐을 때는 마을 안길 정리 등에 동원되기도 했고 환갑을 훨씬 넘겨서야 전깃불을 처음 봤다. 역대 선거 때마다 투표에도 빠지지 않았다.

둘째와 셋째딸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현재 할머니의 후손은 외손자와 증손 등을 합쳐 모두 93명. 외아들 박희봉(朴熙峰·57)씨는 어머니에 대해 “법에 어긋나거나 도(道)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착실하게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기자>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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