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념논쟁]한미관계와 평화협정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8시 54분


남북정상회담이 한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가장 앞에 내세운 조건 아래 남북관계에 적어도 표면적인 수준에서 큰 개선이 가시화된 직후, 또 하나의 뜨거운 토론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이 한미관계와 평화협정의 문제이다.

우선 보수적 입장에서는 남북정상회담 때 한국쪽이 미국의 주요 관심사인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대해 사실상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미국이 섭섭하게 느끼도록 했다고 해석한다. 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완전히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한국정부가 강조함으로써 “그렇다면 왜 미군이 남한에 주둔해야 하고 왜 한미군사동맹이 계속돼야 하느냐”의 물음이 확산되도록 만든 데 대해서도 미국은 불편해 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한마디로 남북관계에서 불확실한 진전을 얻은 대가로 한미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소원함을 낳게 만들었으며 한미군사동맹의 기반을 약화시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잠복해 있던 국내의 ‘반미운동’ 또는 ‘미국 비판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보수적 입장에 따르면 미국은 한반도의 새로운 상황에 미국 나름대로 적응하고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특사를 받아들여 북―미 사이에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본다. 물론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위해 한국이 제의해 온 남북한 및 미중의 4자회담 방식도 고려한다고 북―미사이에 합의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북―미회담이 주(主)가 되고 남북회담은 종(從)이 되리라고 전망한다. 바로 이러한 틀을 북한이 처음부터 갖고 있었기에 북한은 남북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평화구조와 평화협정에 관해 한마디 말도 담지 않았다고 그들은 분석한다. 결국 한반도평화구조 수립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남북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북―미회담이 주도하게 만드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진보적 입장은 상반된 해석을 제시한다. 비록 한미관계에 소원함이 생겨났다고 해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었다면 그것은 명분론으로도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고 현실론으로도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외국군이 언제까지 이 땅에 있어야 하느냐. 이제 나갈 때도 되지 않았느냐. 또는 평화유지군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한미군사동맹도 이제 파기되거나 본질적으로 수정돼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평화협정과 관련해서도 “어차피 북―미수교가 실현될 것인데 그 때 북―미 수교협정을 통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종결과 평화’가 선언되고 그것에 병행해 남북 사이에 평화가 약속된 뒤 미중이 보장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냐”고 반문한다. 남북합의와 북―미합의는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두개의 기둥이라고 그들은 본다.

두 입장의 접점이 쉽게 찾아질 것 같지 않다. 보수적 입장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이 오히려 불투명해졌다고 보는 데 반해 진보적 입장은 한반도는 확실히 평화에 접근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한반도 평화구조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앞으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