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른 銃風/1심판결 의미]"3인방 자작극"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53분


‘97년 12월,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은 실제로 있었다.’

법원은 11일 ‘총풍’ 3인방으로 불렸던 오정은(吳靜恩) 한성기(韓成基) 장석중(張錫重)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보석을 취소함으로써 ‘형식상’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선고를 통해 “오씨는 이번 사건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한씨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장씨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밝혀 상징적으로 혐의의 경중을 가렸다.

▼관련기사▼
'총풍 3인방' 실형 선고…권영해씨는 무죄
총풍관련 오정은 등 한때 실종
민주-한나라 '총풍사건' 공방 치열

이같은 구도는 98년 10월26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동일한 것이다. 오씨가 중심이 된 3인방이 97년 11월말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에 무력 시위 요청을 하고 총격 등의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 홍보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이 첫번째 구도.

또 12월10일부터 12일까지 장씨와 한씨가 중국 베이징(北京)의 켐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이철운과 김영수, 아세아태평양위원회 박충 참사 등을 만나 판문점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마지막이다.

안기부의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검찰에 송치돼 한나라당측 변호인을 접견하기 전까지 검찰에서 진상을 고백한 점과 이들의 교육 정도와 경력 등을 종합할 때 안기부에서 한 자백은 스스로 판단해 한 것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배후 개입 여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판부가 검찰과 한나라당 주장에 ‘균형’을 맞추려 애쓴 점이 느껴진다.

배후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기록상 확인할 수 없다”고만 언급했다. 결국 이번 1심 판결만으로는 오씨 등이 사전 사후에 이회창후보측에 보고를 했는지는 확정되지 않은 셈이며 사건은 일단 오씨 등 3인이 주도한 ‘해프닝성 자작극’으로 규정됐다.

재판부는 또 오씨 등이 검찰에 송치된 이후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받지 못해 검찰에서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는 주장도 일부 수용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변호인 접견이 방해된 98년 10월7일과 9, 10, 11일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외의 진술을 받아들여 유죄를 인정했다.

권영해(權寧海)전 안기부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죄 구성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것이다.

권전부장이 당시 이대성(李大成)해외조사실장에게 총풍 기도 사실을 확인하도록 지시한 뒤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은폐하지 않고 이후 수사에 사용되게 했다는 정황이 인정됐다. 그가 사건을 안 즉시 조사하지 않은 형식적 직무 소홀에 대해 비난받을 수는 있으나 이를 적극적인 직무의 ‘유기’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 재판부 한나라 손들어준셈 ▼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이 98년 10월 처음 알려진 이후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유는 ‘배후 의혹’ 때문이었다.

당시 여당은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북한에 총격을 요청한 국기(國基)를 뒤흔든 중대 사건”이라며 이총재의 총재직 사퇴 등을 촉구했다. 반면 야당은 “여당이 사건을 부풀리고 조작해 이총재와 야당을 음해한다”고 반박하며 설전을 벌였다.

배후 의혹의 근거는 검찰이 제기한 총격 요청 3인방과 이총재 동생 회성(會晟)씨의 ‘유착 의혹’이다. 검찰은 3인방이 총격 요청을 하기 전에 △대선보고서를 이총재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회성씨에게 주선해 달라고 한 사실 △회성씨가 대선기간중 선거사무실로 사용한 조선호텔 스위트룸에서 이들을 수차례 만난 사실 등을 근거로 회성씨가 총격 요청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배후를 규명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후 2년 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배후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재판부의 판단도 이같은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 배후 의혹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 후 “검찰 수사 기록상 총격 요청을 했던 당사자들이 사전에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동생 회성씨에게 보고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 무엇을 보고했는지 등에 대한 수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배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수사 기록상 배후라는 것을 확인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죄를 짓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증거가 없는 경우’도 무죄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후 의혹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춘풍사건 일지 ▼

▽97년

△12.12〓안기부(국정원 전신), 한성기씨 총격요청 첩보 입수 조사

▽98년

△8.17〓경찰청, 한씨 사기혐의로 구속

△9.9〓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구속

△9.17〓장석중씨 구속 △9.25〓안기부,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씨 서울지검 공안1부로 송치

△9.28〓한나라 이회창총재 동생 이회성씨 출국금지

△10.2〓장씨 동생과 한씨 변호인, 안기부 고문 주장

△10.21〓검찰, 이회성씨 소환조사

△10.26〓총풍사건 기소 및 수사결과 발표 △11.30〓1차 공판

▽99년

△2.18〓오, 장씨 보석으로 석방

△8.16〓한씨 보석

△11.18〓오씨와 한씨, 국가 상대 10억원 손배소

▽2000년

△1.8〓권영해 전 안기부장 형집행정지로 석방(북풍사건으로 구속후 추가기소) △11.13〓검찰, 피고인들에게 징역 10∼3년 및 자격정지 10∼3년 구형

△12.11〓1심 선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