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파업철회 의미·전망]힘빠진 노동계 동투

  • 입력 2000년 12월 4일 01시 33분


한국전력노조가 지난달 24일과 30일에 이어 또다시 파업을 유산시킴에 따라 노동계 동투(冬鬪)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게다가 이번 파업 철회는 이미 파업명령을 내려 조합원들이 한전본사에 집결한 가운데 민영화를 인정한채 고용승계등과 맞바꾼 것이라서 한전노조의 파업투쟁은 명분을 잃은 형국이 됐다.

3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중앙노동위원회 특별조정회의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밤 12시까지 계속됐다. 회의 서두에 정부측은 한전 민영화 및 분할매각에 대해 국회에서 합의한 내용 이상의 양보는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노조도 “그렇다면 파업 강행”의사를 밝히고 정회에 들어갔으나 오경호(吳京鎬)노조위원장은 “회의를 두고 봐야 알 것”이라고 타결 가능성을 내비쳤다.

오후 9시. 조정위원들이 조정안을 마련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사양측이 최종 합의한 내용은 △법인 분할시 노조에 사전통보하고 근로자 고용보장과 근로조건을 협의 △민영화는 노조, 한전, 정부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제반 문제점 협의해 시행 △민영화시 고용승계 적극 노력 △육아휴직 확대 등 근로조건 개선 등이다.

그러나 합의문 초안이 일부 방송에 보도되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본사 강당에 모여있던 3000여명의 조합원들이 “파업철회가 웬말이냐”고 흥분했고 오위원장을 비롯한 협상대표는 조합원을 설득하기 위해 밤늦게 한전 본사로 향했다.

파업 철회 의사를 밝히는 오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조합원들은 “파업” “파업”을 외치며 반발했고 오위원장은 떼밀리듯 10분만에 연단을 떠나야 했다.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 한때 합의가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밤 11시30분경 다시 중노위 협상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오위원장은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사상 초유의 파업은 결국 무산됐다.

중노위에서 파업 철회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밤 12시를 넘기면서 노조원들은 강당을 나와 하나 둘씩 흩어졌다.

한편 한전노조가 극적으로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노동계 동투와 양대노총의 공조는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4일 오전 ‘임원, 산별대표자 연석회의’를 갖고 향후 투쟁방향을 논의키로 했으나 상황 변화에 따라 공조파기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5일로 예정된 양노총 공동 경고파업과 서울역 집회도 무산될 것이 확실시된다.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국회 상정에 맞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원칙하에 내년까지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지만 그동안 공동투쟁에는 미온적이었다. 그런데다 한국노총 공공부문 투쟁의 선봉에 섰던 한전노조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이제 더 이상 공조 유지에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항공사와 지하철 등 금주에 파업을 예고한 사업장들의 파업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500여명은 조종사 독자노조 승인을 요구하며 5일까지 파업찬반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 서울 지하철 5,6,7,8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도시철도노조도 6호선 개통에 따른 인원확충을 요구하며 8일 파업 돌입을 결의했다. 15일로 예정된 철도노조 파업도 이번주 투쟁 양상에 따라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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