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풍속도]경제력+전문성 '10대 프로'가 뜬다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58분


고교생 최정우군(16·서울 세화고 1년)은 요즘 ‘리포터’라는 직함의 명함을 갖고 다닌다. 최근 창간한 한국고교신문사의 자유기고가 자격이다.

2월 MP3사이트를 만든 오관현군(17·서울 성북구 정릉1동)은 성인인터넷방송사들의 배너광고를 유치하며 월 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오군은 “온라인 솔루션업체를 세워 일반인들을 상대로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는 친구도 있다”며 “주유소 아르바이트부터 인터넷사업체까지, 한반에서 5명 중 한명꼴은 돈을 번다”고 말했다.

‘프로 틴(Pro Teen)’이 뜨고 있다.

프로페셔널 틴에이저(Professional Teenagers)를 뜻하는 이 말은 학생과 사회인을 구분 짓는 ‘울타리’로 여겨지던 경제력을 확보한 10대들, 의사결정과 행동에서도 순수와 풋풋함보다는 나름대로의 ‘프로 의식’을 갖춘 10대를 일컫는다.

10대가 경제력을 지니면서 학교 안 풍경도 달라졌다. 요즘 한창 진행중인 고교축제는 상업성 짙은 90년대 대학축제를 방불케 한다.

서울S고 학생회는 길거리 농구와 풋살(족구의 일종)시합을 위해 경비 장비 일체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리복사의 협찬을 허가했다. 서울B고는 인기댄스그룹 ‘원타임’ 초청비용 4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교생이 모금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이달 8일 서울 J여고에서는 성인 나이트클럽에서나 있을 법한 ‘노예팅’이 등장했다. 이 학교 2학년 김은영양은 “무대에 올라선 여학생들을 놓고 수백명의 남학생이 몸값을 매긴 뒤 가장 높은 값을 부른 남학생과 커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주장이 분명한 까닭에 386세대 못지 않게 데모 열기도 뜨겁다. 현재의 이슈는 사회민주화가 아닌 두발자율화. 과거의 ‘전대협’을 연상케 하는 ‘청소년 연대 with’가 결성돼 “10대도 인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청와대와 교육부,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는 등 압력단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10대의 ‘프로화 경향’은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광고회사 오리콤이 중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어른의 말씀에 항상 복종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72.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내 나름의 논리로 어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주이유다.

이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올 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비즈니스저널 등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통해 재계의 거물로 떠오른 10대들을 ‘틴 타이쿤(Teen Tycoon)’이라며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디지털 혁명에 따라 10대의 N세대가 최고의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의 저자 돈 탭스콧의 분석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成瓔信)교수는 “학생다운 순수함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이덴티티(자아정체성)’를 일찍 찾는다는 차원에서 10대들의 의식이 점차 자립화 선진화된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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