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여자역도 감독 박혜정 "외할아버지는 역도산"

  • 입력 2000년 9월 9일 16시 49분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의 ‘고묘지(光明寺)’. 본당 옆 취사장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 크기의 목상 하나가 놓여 있다. 전신에 흘러넘치는 투지와 찢어질 듯 크게 부릅뜬 눈. 바로 ‘세계프로레슬링의 신화’ 역도산(力道山·한국명 김신락)의 목상이다.

역도산은 호탕한 제스처와 파워 넘치는 ‘가라데 촙(당수)’을 앞세워 2차 세계대전 후 절망에 몸부림치던 패전국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의 기개를 떨쳤던 주인공. 1963년 12월 일본 야쿠자의 칼에 찔려 39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일본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9일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는 북한올림픽대표 선수단의 여자역도 감독 박혜정(27)이 역도산의 외손녀이자 박명철 내각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체육장관)의 넷째 딸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박혜정은 중고교 시절 예술체조(리듬체조)를 전공한 뒤 조선체육대학에서 역도로 바꾼 운동선수 출신. 졸업후 여자역도 북한 첫 처녀감독으로 부임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압록강체육선수단 소속 인민체육인.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이성희(여자 58㎏급)를 키워내 북한 올림픽 사상 첫 역도 금메달의 꿈에 부풀어 있는 그는 비록 감독 연한은 짧지만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독창적인 훈련방법을 도입하는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박혜정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일제침략과 남북분단이 낳은 ‘비극의 가족사’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북한에서도 드물다.

먼저 박명철은 194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역도선수로 평양체육대학을 졸업했다. 북한에서 전문체육인이 이렇게 고위간부로 승진한 예는 매우 드문 일.

박명철의 아버지 박정호는 김일성주석의 특별한 신임을 받았던 고위 대남공작원이었다. 그는 광복직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되면서 초대 총무부장으로 일했으며 6·25전쟁 전 위장귀순 형식으로 남파돼 활동하다가 ‘근로인민당재건사건’(57년) 때 구속돼 59년 사형당했다. 그러나 박명철 일가족은 한때 아버지가 전향한 것으로 알려져 지방으로 쫓겨가는 고초를 당했다.

훗날 박명철의 누이 박명희는 아버지의 내력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일성주석에게 수차례의 편지를 썼고 결국 십여년 만에 김주석과 연결될 수 있었다.

마침 김주석은 박명철 일가족을 계속 찾고 있던 터라 소재가 파악되자 즉시 접견했고 “내가 친아버지가 되어 너희들을 돌봐주겠다”며 박명철 일가를 직접 돌보게 됐다는 게 당시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다.

이후 박명철 형제들은 당과 정부의 주요 직책에 중용됐다. 맏누이 박명희는 최고인민회의 제8, 9기 대의원으로 선출됐으며 장남이며 평범한 체육인에 불과했던 박명철은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박혜정의 어머니이며 박명철의 부인인 김영숙의 사연은 더욱 기구하다. 역도산은 일본인 오카다 형사보의 눈에 띄어 40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 도일을 반대하는 집안의 강요에 못이겨 강제결혼식을 올렸다. 역도산은 결혼식 직후 일본으로 떠났고 그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난 김영숙은 거의 아버지 없는 아이나 마찬가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역도산의 체격을 물려받은 김영숙은 훌륭하게 성장, 북한의 농구대표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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