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파업 정부대책]의보수가 현실화 年2조3464억 추가 소요

  • 입력 2000년 8월 10일 23시 23분


보건복지부 A국장은 10일 새벽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늘 오전 발표되는 정부 대책에 약사법 재개정 부분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그것도 넣어야 하나. 문제점이 드러나면 보완하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의보수가 인상이 핵심이에요”라고 말했다.

A국장의 생각은 대부분의 복지부 간부들이 의료계 폐업 사태에 대해 가진 시각을 대변한다.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이 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도록 의료보험 수가를 올려 주면 사태 해결이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분업으로 의사들, 특히 동네의원이 받는 타격이 심각한 건 사실이다. 내과 개원의 유혜신씨는 “분업 실시 뒤 하루에 환자 50명을 진료했는데 수입이 250만원에 그쳤다”며 “어떻게 직원 월급을 주고 월세와 장비 리스비를 내며 재투자를 하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10일 발표한 ‘보건의료 발전대책’은 이처럼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의료계를 위해 진료원가의 80% 수준인 의보수가를 2년 내에 100%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9월부터 재진료와 원외처방료를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재정은 2002년까지 2조2000억원. 이중 1조5400억원은 의보재정에서 충당하는데 이를 위해 직장인과 공무원 교직원의 의료보험료를 2002년까지 각각 6.3%와 7.9% 인상키로 했다.

나머지 6600억원은 9월부터 환자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내는 본인 부담금으로 충당된다. 이에 따라 동네의원에서 진료(초진)를 받고 3일분 약 처방을 받아 총액이 1만2000원이 나온 경우 환자 부담금이 2200원에서 3700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7월 의약분업 실시와 함께 의사 처방료를 69.3%, 약사 조제료를 39.7% 인상하면서연간 1조5437억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된다고 밝힌 만큼 이번 수가 인상으로 연간 2조3464억원 이상을 국민이 더 부담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의료계 반응은 부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6월 폐업 당시 의보수가를 70%, 의료보험료를 2.6배 올리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안과 차이가 심하다.

전공의들은 돈 몇 푼을 더 올려 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자세에 비판적이다.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는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가 전제되지 않은 어떠한 정부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또 의사들의 분업 개혁 요구를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한데 대해 정부의 공식적 사과를 촉구하고 약사법 개정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은 채 하위 법령만 손대는 건 ‘국민 건강권과 의권 수호’라는 투쟁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서양 의학 도입 100년만의 혁명이라는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의료계가 느끼는 절박한 위기 의식을 외면하고 돈 문제만 거론하니 국민에게 불편과 경제적 부담을 주면서도 폐업 사태를 풀지 못하는 셈이다.

의협 노만희(盧萬熙)총무이사는 “정부가 처음부터 의료계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였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의협 상임이사진을 비롯한 의료계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번 안이 의료계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고 사실상 마지막 카드나 마찬가지이므로 더 이상의 강경 투쟁이 무리라고 지적한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